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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국내는 한창 대선 후보 2-3위가 단일화를 한다고 ‘난리’를 치던 21일, 이명박 대통령은 멀리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또 ‘영업’을 뛰고 있었다.
200억 달러 규모의 원전 4개 계약. 향후 60년간 관리 서비스와 운영하는 데만 180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공사다.
기름이 펑펑 나오는 산유국에 원자력 발전을 판다? 걔네들이 뭐가 아쉬워서?
오히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는 고개가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우리 대통령이 뭐라고 했기에? 이러다가 시베리아에 얼음을 팔려나?
그런데 UAE 칼라파 국왕(대통령)은 싱글벙글이다.
“우리는 국가 대 국가가 아니라 친구 대 친구다.” 연신 친구라는 단어를 계속 입에 올린다.
이미 계약까지 체결된 상황에서 또 방문해준 이 대통령에게 ‘또 와줘서 고맙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물건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끝까지 기분 좋은 장면은 A/S가 형편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선뜻 떠올리기 힘든 장면.
이 대통령의 A/S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예 바라카에 새로 짓는 원전 건설현장 착공식을 찾아간다. 잔뜩 기대감에 부푼 UAE원자력공사 사장에게 “세계에서 가장 완전한 원전이다. 세계 사람들이 찾아 올 것”이라며 한껏 띄워준다.
원자력 공사사장은 이 대통령 덕분이라며 이웃 사우디아라비아에게도 소개하겠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빠뜨리지 않았다.
바로 이 부분. 이 대통령이 굳이 UAE를 방문한 것도 이 점을 노린 것.
하나 판 사람에게 또 팔고 그 옆 사람에게도 또 팔기. 이 대통령의 전매특허 고객 유치 방식. 이게 바로 이 대통령의 ‘외교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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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밤 캄보디아와 UAE 순방을 마치고 귀국했다. ⓒ 뉴데일리
# 2.단 두 사람의 TV토론회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렸던 우리나라. 이 대통령이 한창 '영업'을 뛰고 있던 그 시간이다.
취침시간도 미루고 유권자들을 TV 앞에 모이게 한 안철수-문재인 두 대선 후보는 한 시간이 넘도록 ‘대화’라는 것을 했지만, 과연 무엇을 남겼는지는 뚜렷하지 않다.
국회의원정수를 ‘조정’하느냐 ‘축소’하느냐를 가지고 의견을 달리했고, 경제민주화에 있어 재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를 가지고 싸웠다. 벌써 몇년전부터 나온 끝이 나지 않는 논쟁이다.
정작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외교’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이야기가 나온 것이 없다. 기껏 문재인 후보가 취임식 때 북한을 초청한다거나 임기 첫해 남북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이해할 수 없는’ 얘기가 그나마 ‘외교’라는 카테고리를 적용할 수 있을까 싶다.
“여러분 이 분들이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들입니다.”
TV토론을 본 한 네티즌은 이렇게 실망감을 표현했고, 다음날 대다수 언론과 평론가들 역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그렇게 하루가 더 지난 23일. 문-안 두 후보는 여전히 단일화조차 하지 못하는 서로의 ‘속 좁음’만 국민들을 향해 읍소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그 사이 외교를 마친 이 대통령은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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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일 새벽까지 국민들의 잠을 설치게 했던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TV토론 장면. ⓒ 캡쳐화면
◆ 언제까지 ‘국내’에서만 싸울 텐가?
가까이 치러진 미국 대선만 해도 그랬다.오바마와 롬니. 두 후보는 이미 G2로 떠올라 미국과 함께 세계를 호령하는 중국과의 관계 그리고 망해가는 유럽(EU)과의, 여전히 건재한 러시아 그리고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북한과의 관계 설정을 두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다.
그런 일을 하는 자리가 대통령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명줄(운명)을 좌지우지 한다고 했던 외교 말이다.
한중-한일 해저 터널을 뚫자는 말까지 나오는 마당에 지금의 ‘우리’ 대선 후보들은 전라도와 제주도를 잇는 해저터널을 뚫자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필요한 얘기일 수도 있다.
국회의원 정수가 너무 많은 것도 사실이고, 군복부 기간에 대한 재점검도 필요하다. 금강산 사태,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틀어진 북한과의 관계 재설정도 다시 한 번 생각해봄직한 일인 것도 국민들이 이해 못하는 것 아닐 테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런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우리 후보’들이 간과한 게 아닌가 싶다.
역대 대통령들의 해외 순방 기록을 살펴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순방을 포함해 취임 후 총 49회, 84개국을 방문했다. 중복 방문 국가를 제외하면 43개국이다. 미국은 9번이나 방문했고 일본과 중국도 각각 7회를 찾아갔다.
오바마 대통령과 7번에 걸친 정상회담을 거쳤고 부시 대통령까지 합하면 무려 11번이나 미국과 정상회담을 벌였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도 10번, 일본 총리와도 20차례 가깝게 머리를 맞댔다.
한-중-일 뿐 아니라 러시아 인도네시아 UAE에도 4번, 카자흐스탄 태국을 3번, 덴마크 멕시코 베트남 브라질 프랑스 싱가포르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를 두 번씩 방문했다.
총 순방 비행거리는 75만8천478Km. 지구를 19바퀴 돌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만만치 않았다. 총 27회, 55개국(순방거리 51만5천Km)을 방문해 이 대통령 이전까지는 최다를 기록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23차례 37개국을, 김영삼 전 대통령은 14차례 걸쳐 모두 28개국을 방문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많은 외교를 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대한민국 국격에 맞춰 우리나라 대통령이 해야 할 ‘외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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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 순방 중 비행기 내에서 업무를 보는 이 대통령 ⓒ 자료사진
앞으로는 외교의 절실함이 더 부각될 것은 분명하다.우리의 동맹국인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그동안의 외교 정책이 더욱 힘을 받게 됐다. 반대로 중국은 시진핑 국가 차기 주석체제로 변화하면서 외교 정책의 변화가 예상된다. 좌충우돌하는 일본의 정치 지형은 더욱 한-중-일 세 국가간 치열한 외교 전쟁에 기름을 퍼부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오죽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는 친미도 하고 친북도 하고 친중·친소·친일도 다 해야 한다”고 했겠는가.
이 대통령의 전체 임기 1천826일 중 순방날짜만 233일이었다. 재임기간 1/8을 외국이나 비행기에서 외교를 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차기 대통령은 더 많은 날을 나라 밖에서 일해야 할지도 모른다.
중동에서 기자들과 만난 이 대통령의 말이 뼈아프다.
“나는 떠나야 하니 이를 공식적으로 할 수 없지만, 다음 정권에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걱정스러운 것은 있지만, 다음 정권에서 잘 되게 하는 게 내 책임인데…”
대통령이 될 것이 확실해 보이는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청와대에 입성한 뒤에도 지금처럼 좁은 근시안으로 나라를 끌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싶진 않다.아마도 “선거 때는 그럴 수 있지만, 누구나 정권을 잡으면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말처럼 정권을 잡으면 나라 밖으로 시선을 돌릴 것이라 기대한다. 단지 지금은 논란이 생길 수 있는 ‘외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정치적 셈법이라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유력 후보들의 주요 국가에 대한 외교 철학을 알지 못한 채 투표소로 가야하는 유권자들이 안타까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