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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강원 고성군 동해안에 있는 육군 22사단 동해선경비대의 철책으로 북한군 병사가 귀순해 왔다.
처음 군에서는 이를 ‘CCTV로 확인했다’고 밝혔다가 나중에 전방 3중 철책을 넘어와 ‘노크 귀순’을 한 게 드러나면서 매서운 역풍을 맞고 있다. 일부 야당 의원은 합참의장 사퇴를 요구한다.
대체 누구의 책임일까? '경계실패'는 현재 군의 '책임'이지만 구조적인 원인은 지난 정권에 있었다.
‘노크귀순’ 장소의 문제
‘노크귀순’을 놓고 야당 의원들은 마치 자신들이 여당이었을 때는 그런 적이 없었다는 듯 현 정권을 비난하며 대선에서의 ‘안보이슈’로 만들려는 기세다. 하지만 이 지역은 지난 정권에서도 계속 뚫렸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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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방송에 나온 동해 CIQ 지역의 모습. 금강산 육로관광을 위해 만든 곳이다.[사진:KBS 캡쳐]
지난 12일 김진표 의원이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22사단은 2003년에 2번, 2006년에 2번의 귀순이 있었다고 한다. 2003년에는 민간인 4명이, 2006년에는 민간인 6명이 22사단 지역으로 귀순했다. 이 중 육상으로는 2003년 민간인 1명이 귀순했다.
현 정부 들어서는 2009년 또 다른 북한군 장교의 ‘노크귀순’을 포함해 2010년에도 북한군 1명이 육상으로 귀순했다.
김 의원의 자료만 보면 이번 정부에게 ‘심각한 군기해이’와 ‘경계태세 실패’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빠져있다. ‘노크귀순’ 부대가 동해선경비대라는 점이다.
동해선경비대는 동해 CIQ에서부터 전방 철책을 감시하는 부대다. 동해 CIQ는 금강산육로관광을 위해 북한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출입국을 관리하는 곳이다. 즉 이곳으로부터 25km 북쪽의 금강산까지는 왕복 6차선 도로 너비의 길이 훤하니 뚫려 있다는 말이다.
과거 DJ정부는 금강산 관광사업을 한다며 동해안의 철책을 걷어치우고 북한 금강산까지 포장도로와 철길을 놓았다. 그 서쪽으로는 북한 주민들이나 북한군과의 접촉이 없도록 철책을 쳐놓기는 했지만 GOP나 휴전선을 지키는 철책과는 수준이 달랐다. 지뢰지대 또한 상당부분 제거했다.
2008년 7월 11일 새벽 우리나라 관광객인 박왕자 씨가 금강산 관광을 갔다 북한군의 총에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 뒤 금강산 관광은 중단됐지만 도로는 물론 주변 환경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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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표 민통당 의원이 지난 12일 배포한 자료 내용. 22사단 인접지역으로 넘어온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
이번에 ‘노크귀순’을 한 병사도 부대를 이탈한 뒤 고성항으로 갔다가 이 철길을 지형지물로 삼아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진술했다. 즉 북한 입장에서는 금강산 육로관광을 위해 만든 철길과 도로는 대북경계의 ‘허점’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경계병력 감축: 盧정권 시작한 국방개혁 결과
다른 문제는 대북경계병력의 감소다. 군 관계자의 이야기다.
“잘 모르시는 거 같은데 전방경계병력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예전 같으면 전방 경계지역을 ○개 대대가 지켰지만 지금은 그보다 줄어든 ○개 대대가 지킨다. 어쩔 수 없이 전방에 빈 소초도 늘고, 병력들의 경계 지역도 크게 넓어졌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GOP 지역에 설치돼 있는 전방 소초의 숫자는 모두 ○○○개. 여기에 투입되는 병력은 ○○○개 소대로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 ○○%의 병력이 모자란다는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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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크귀순'이 발생한 뒤 국회 국방위 의원들이 22사단 동해선경비대 막사를 찾았다.[사진. 연합뉴스]
언제, 왜 그렇게 된 걸까. 다른 군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군 복무기간을 줄이고, 갈수록 병역자원이 감소하면서 일어난 일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과거에는 ○○○개 소초에 모든 병력이 가득 차 있었다. GOP 경계에서도 빈틈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병력 부족으로 고생하는 부대가 상당히 많아졌다. 이런 일이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는 게 간부들의 우려다.”
때문에 盧정권의 ‘국방개혁’을 뒤집으려던 현 정권조차도 ‘GOP 과학화 경계 시스템’을 중단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盧정권은 집권 후 ‘자주국방’을 기치로 내걸고 국방개혁을 시작했다. 당시 기조는 한 마디로 ‘병력 감축 및 장비 신형화’였다. 군 복무기간을 대폭 줄이는 방식으로 육군은 물론 해․공군, 해병대 병력을 모두 줄였다.
전방 철책 경계도 ‘GOP 과학화 경계시스템’으로 바꾸는 게 기정사실이 됐다.
盧정권 때부터 추진한 이 사업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731억 원을 투자해 GOP경계를 병력, 장비와 함께 GOP과학화 경계시스템이 지키게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장비는 물론 ‘국산화’하기로 결정했다.
군인 대신 GOP 지킬 장비, 성능은? 효용성은?
군 당국은 GOP과학화 경계시스템을 도입하면 장병들이 철책 경계근무에 투입되는 시간이 크게 줄면서 잠자는 시간도 늘고, 생활이 편해질 것이라고 한다. 감시장비가 배치된 곳은 상황실에서 원격으로 감시하고, 경계병력은 그저 순찰만 돌아도 될 것이라고 한다. 과연 말처럼 될까.
2006년 당시 GOP과학화 경계시스템이 설치된 중부전선 5사단 지역을 찾았다. 현장을 관리하는 요원들은 ‘비공식적’으로 이 시스템이 고장도 잦고, 사각지대도 많이 발생해 과연 효용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가격 또한 ‘너무 비싸다’는 게 부대원들의 주장이었다.
GOP 지역은 20℃가 넘는 극심한 일교차와 혹한․혹서를 모두 겪는 환경이다. 환절기에는 아침마다 생기는 연무 때문에 ‘민간 장비’는 쉽게 고장이 난다. 5사단의 GOP과학화 경계시스템도 ‘민간 장비’와 다르지 않았다. 당시 관계자들에게 물으니 “이 시스템의 운영과 수리를 위해 3개 소대 병력이 와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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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위사업청이 배포한 'GOP과학화 경계시스템' 설명자료 중 구성도. 이 시스템이 배치되면 전방경계병력이 더 줄어든다.
5사단 시스템이 ‘실패’한 뒤에도 정부는 2011년 개량된 GOP과학화 경계시스템을 중동부 전선 12사단 지역에 설치했다. 군 관계자들은 “5사단 지역의 시스템보다는 더 낫다”며 기대감을 드러내지만 이 또한 국내 모 대기업이 납품하는 시스템이다.
군사 연구가들은 다른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과연 우리나라의 GOP에서 이 ‘과학화 경계시스템’이 사람 대신 경계근무를 설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GOP과학화 경계시스템’은 광학 감시장비와 센서, 상황실과의 통신 시스템, 구동부, 무기부로 구성돼 있다. 이것도 기계다 보니 광학감시장비에는 ‘사각(死角)’이 존재한다. 상황실에서 보는 시야는 현장에서 보는 것 보다 훨씬 좁을 수밖에 없다. 장착된 무기를 쏠 수 있는 각도와 범위도 제한돼 있다.
알려진 바로는 ‘진동감지기’나 ‘동작감지기’ 등이 이 시스템에 포함된다는 말도 없다. 5사단 장비의 가장 큰 취약점이었던 ‘연무’에 강한지 하는 점도 의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북한군과의 대치
군사 연구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북한군의 특성이다.
지난 16일 일부 언론은 ‘북한군 특수부대가 우리 전방 GP까지 들락거렸다’고 보도했다. 이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건 군대 다녀온 사람이라면 안다.
우리가 알고 있는 GOP 전방 철책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 사이 설치한 것이다. 그 이전에는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에 제대로 된 철책이 없었다. 상호 침투도 쉬웠다. 침투부대들은 이미 침투했던 경로를 통해 어디가 지뢰지대이고 장애물인지 웬만큼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북한군은 전방 군단마다 여단급 특수부대를 배치해 놓고 있다. 이들은 틈만 나면 우리 군의 철책과 GOP를 뛰어넘으려는 부대다. 이들은 적외선 감시장비를 피하는 방법도 계속 연구하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GOP과학화 경계시스템’이 이들을 막을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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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연길에서 본 북-중 국경. 이런 곳이라면 '과학화경계시스템'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군사 연구가들은 ‘무인 감시 시스템’을 국경 감시에 도입한 나라들은 북한군과 같은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중 대표적인 나라인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에서조차 무인감시장비의 ‘패턴’을 파악해 밀입국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북한군이 GOP과학화 경계시스템을 뚫지 못하겠느냐는 반문이었다.
이번 ‘노크 귀순’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이번 경계실패는 MB탓, 합참의장 탓’이라는 식으로 흐르고 있다.
하지만 일부 군사 연구가들은 22사단 경계지역이 왜 이렇게 자주 뚫리는지, GOP경계 병력 부족, 군 간부들의 무기력증과 고위 장교들의 관료주의 등 현재 군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이해한다면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