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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4일 故장준하의 유가족과 ‘장준하 추모공원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관계자들이 ‘장준하 선생은 살해당했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이들은 지난 8월 1일 경기 파주시 광탄면 나사렛 천주교 공동묘지에서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에 조성 중인 기념공원으로 시신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가 검시한 결과라며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유골의 두개골 귀 뒤쪽에 6~6.5cm 가량 크기로 동그랗게 금이 가 있는 흔적이 있다는 게 근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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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준하 추모공원 추진위원회' 등이 공개한 故장준하의 두개골.
장준하의 유가족과 추진위 측은 이를 근거로 청와대에 진상조사를 공식 요구하기로 했다. 좌파 진영은 “장준하 선생이 독재정권에 살해된 것이라면 박근혜는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의 ‘15년 전 개인 소견’
지난 8월 1일 이장 때 장준하의 유해를 검시한 사람은 서울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 이 교수가 ‘장준하 타살 의견’을 내자 여론은 갑론을박하며 소란스러워졌다. 한 쪽은 서울대 법의학 교수라는 점을, 다른 한 쪽은 1975년 당시 현장 목격자 인터뷰 등을 내세웠다.
이때 사람들은 이 교수가 ‘이태원 살인사건’ 때도 활약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찾아보니 사건 직후 용의자를 체포했던 주한미군의 범죄수사대(CID)의 조사 결과를 검찰이 뒤집을 때 이 교수의 소견이 중요하게 작용했었다고 한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4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던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당시 홍익대에 다니던 조중필 씨가 흉기에 9차례 찔려 살해된 사건이다. 3대 독자였던 조 씨를 살해한 용의자는 주한미군 가족인 에드워드 리와 군속으로 일하던 아서 패터슨이었다.
사건 직후 주한미군 CID는 패터슨을 살인혐의로 체포했다. 리는 사건 이튿날 부모와 함께 CID에 자수했다. 이후 한국 검찰은 주한미군 CID로부터 용의자를 넘겨받았다.
한국 검찰이 수사할 때 리와 패터슨은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미군 CID는 패터슨이 범인일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한국에 머물던 증인들도 대부분 ‘패터슨’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이때 ‘판’이 뒤집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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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사 당시 현장검증 중인 아서 패터슨의 모습.[SBS 당시 뉴스 화면 캡쳐]
‘법의학자’인 이 교수가 ‘범인은 피해자보다 키가 훨씬 큰 거 같다’는 소견을 내면서 검찰이 패터슨이 아닌 리를 범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피해자 조 씨와 패터슨의 키는 170cm 내외, 리는 키 180cm에 몸무게 100kg의 거한이었기 때문이다.
검찰이 칼끝을 리에게 돌리면서 ‘유력한 용의자’였던 패터슨은 징역 1년이라는 가벼운 형을 살다 특별사면을 받고 미국으로 떠났다. 리 또한 2년의 재판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고 풀려났다.
조 씨 유가족은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패터슨을 살인혐의로 고발했다. 검찰 또한 미국으로 도피한 패터슨에 대해 기소중지 조치를 취했다.
무능한데다 세상 일에 어두웠던 한국 수사당국과 법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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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개봉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의 포스터. 영화의 추측처럼 범인은 패터슨으로 추정된다.
결국 ‘이태원 살인사건’은 ‘살해당한 사람은 있는데 범인은 없는’ 황당한 사건이 됐다. 2009년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되고 논란이 커지면서 당사자들에 대한 비난도 쏟아졌다.
10년 가까이 흐른 2011년 10월 LA에서 패터슨이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졌다. 같은 해 11월 검찰은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이때 검찰은 "그동안 피해자 혈흔 형태, 용의자 주변 인물들의 증언, 새로운 수사 기법을 통해 패터슨이 범인임을 밝혀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문제들도 밝혀졌다.
그 중 '최악'은 조 씨가 살해당한 햄버거 가게가 이튿날 ‘깨끗이 청소를 마친 뒤’ 버젓이 영업을 했다는 것. 살인현장에 수많은 증거와 흔적이 남아 있음에도 경찰이 현장보존을 제대로 못했던 것이다.
미군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주한미군 CID가 처음 패터슨을 범인으로 의심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달라졌다. 당시 CID는 패터슨의 몸에 새겨진 문신과 “패터슨이 평소 ‘내가 노르테 14 조직원이다’라고 떠들었다”는 주변 인물들의 증언, 조 씨가 살해당한 수법이 ‘노르테 14’의 수법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 등을 들어 패터슨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CID는 패터슨이 ‘노르테 14’의 조직원이라는 점도 밝혀냈다.
당시 한국 검찰은 CID의 수사 결과를 무시하다시피 했다. 조 씨의 목과 가슴을 9차례나 찔러 살해한 범행수법의 ‘패턴’, 용의자의 과거, 주변 인물 조사를 위한 주한미군과의 공조 등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않았다.
‘법의학자’라면 검찰의 실수를 막을 수도 있었지만 못했다. 당시 ‘법의학자’는 피해자가 칼에 찔린 상처의 각도만을 중요하게 봤을 뿐 범행의 ‘패턴’이나 해외 범죄 유형 등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는 하지 않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
당시 법의학자였던 이 교수는 2011년 11월 언론에 “검찰의 기소방법에 문제가 많았다. 나는 법적 책임이 없는 단순한 의견 표명을 한 것”이라고 둘러대며 빠져 나갔다.
“‘노르테 14’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느냐”라 말한다면…
이런 비판에 “풀려난 패터슨이 ‘노르테 14’라는 게 결정적인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태원 살인사건’에서는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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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스패닉계 갱 '노르테 14'의 영역표시 그라피티. 아래 4개의 점과 같은 문신을 왼쪽 손에 새긴다.
‘노르테 14’는 LA와 북부 캘리포니아 일대에서는 유명한 히스패닉 갱(Gang) 조직이다. 붉은 두건과 붉은색 옷을 입고 다니며 왼손에 점 4개의 문신을 새겨 조직원임을 표시한다. 자신들을 나타낼 때는 알파벳 14번째인 ‘N’과 로마자 ‘ⅩⅣ’를 함께 표시한다.
보통 조직원 한 사람이 공격받으면 10명 이상 떼거리로 몰려가 ‘복수’를 하고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마약, 인신매매, 총기밀매 등이 수입원인 이들에게 살인은 ‘통과의례’이자 ‘오락’ 수준이다.
쉽게 말해 ‘마피아’ 급도 안 되는 질 나쁜 ‘조폭 떼거리’다. 때문에 LA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는 악명이 높다. ‘갱생’도 어렵다고 본다. 2011년 4월에는 마트에서 강도짓을 저지르다 잡힌 17살짜리 ‘노르테 14’ 조직원은 그 이전에 노상강도, 주택 침입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징역 75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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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4월 '노르데 14 조직원에게 징역 75년을 선고했다'고 보도한 美지역언론 보도.
이런 ‘갱’ 조직원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 살인 용의자일 때 검찰, 법의학자는 어떤 판단을 해야할까.‘이태원 살인사건’, 검찰에 ‘독박’ 씌운 법의학자에게 독자가 던진 질문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 교수가 ‘타살 의혹’을 제기한 장준하의 유골사진을 본 독자들 중 일부가 의견을 보내왔다. 그 중에서는 ‘의사’도 있었다. 한 독자의 의견이다.
“…(중략)… 제가 골절 모양을 보고 인위적으로 만든 것 아닌가하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장 시에 만들어진 골절양상도 아닌 것 같다. 제가 보기에는 어떤 둔체에 정면으로 부딪힌 골절(둔기로 치던지 추락 시 부딪혔던 간에)이 아니라 그 부위가 뭔가 돌 같은 것에 빠른 속도로 스치면서 골절된 것 같다.
가장 심한 운동 에너지를 받은 부분은 원형 부위의 중간이 아니라 원주의 우상부인 것 같다.(그 부위가 가장 심한 골절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골절이 강하게 퍼져나가는 양상이 보인다.) 이 부분부터 닿으면서 좌하부 쪽으로 스쳐간 것으로 보인다. 이외 원주의 우하부에 약하게 골절이 퍼져나가는 양상이 있지만 나머지 부위들은 주변으로 골절이 퍼져나가는 양상이 전혀 없다.
개인적 소견이지만 인위적으로 저런 골절을 일으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므로 누가 둔기로 쳐서 만든 골절이기 보다는 추락 시에 생긴 골절일 가능성이 훨씬 높아보인다.…(하략)….”
장준하의 유해에서 보이는 둥근 골절이 ‘둔기에 의한 타살 가능성은 낮다’는 주장은 이 독자의 의견만은 아닌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국내 최고의 법의학자인 고려대 법의학교실의 황적준 교수나 서울법의학의원의 한길로 박사와 같은 분이 장준하 유해를 보고 ‘공식적인 의견’을 내준다면 가장 좋겠지만, 이들이 언론과의 접촉을 꺼려하다 보니 지금은 이 교수의 의견만이 ‘진실’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다.
이 교수가 이번에 낸 ‘소견’이 15년 전 주한미군 CID가 밝혀낸 ‘패터슨은 노르테 14 조직원’이라는 수사결과를 무시했던 ‘실수’와 다르다고 장담할 수 있을는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