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내부 반발, ‘제 식구 앉히기’ 잡음...불통(不通), 독선 우려지역 문화예술 발굴 등 검증 안 된 사업 강행5월 공연성수기에 산하 예술단 공연은 취소·연기
  • ▲ 지난 1월 17일 취임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의 운영 계획을 설명하고 있는 박인배 세종문화회관 사장.ⓒ 사진 연합뉴스
    ▲ 지난 1월 17일 취임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의 운영 계획을 설명하고 있는 박인배 세종문화회관 사장.ⓒ 사진 연합뉴스

    세종문화회관이 침묵에 빠졌다. 각종 대관행사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회관 산하의 9개 예술단 공연은 언제부터인가 자취를 감췄다.

    지난 달에는 공연을 기획하는 실무진들이 사장의 기획안 수정지시에도 불구 원안을 그대로 다시 제출하는 ‘하극상’까지 일어났다는 후문이다. 직원들이 사장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낸 셈이다.

    회관의 대표적 문화행사로 8년째 서울시민의 큰 사랑을 받아온 ‘광화문 별밤축제’는 행사 개최 일주일을 앞두고 돌연 취소됐다.

    뿐만 아니다. 산하 9개 예술단 중 3곳은 단장이 자리를 떠났다.

    한술 더 떠 ‘코드인사’를 둘러싼 잡음도 들린다. 회관 안팎에서 신임 사장의 불통(不通)과 독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모든 것은 지난 6개월간 일어났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멘토‘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박인배(59) 사장이 있다.

    지난 1월 10일 박 시장의 지명을 받아 사장에 취임한 박 사장은 임명당시부터 ‘편향 인사’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극단 ‘현장’ 예술감독을 지낸 박 사장은 서울노동자문화예술단체협의회 대표,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운영위원장, 한국민족극운동협회 이사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민예총) 상임이사 등을 거쳤다.

    이력으로도 알 수 있듯 국내 문화예술계의 대표적 좌파 인사로 국보법 폐지, 제독 북한공작원 송두율 교수 석방 등에 앞장섰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에는 박 시장 선거캠프에서 문화환경분과 위원장을 맡았다.

    박 사장 임명 당시 시 주변에서는 그의 취임과 함께 회관 운영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돌았다.
    현실은 우려를 넘어섰다.

    취임 6개월, 세종문화회관은 질식할 것 같은 침묵 속에 표류를 거듭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 못지않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소통’을 입에 달고 다니는 박 사장이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습은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

    문제의 발단은 예산 삭감에 있었다. 박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산하 9개 예술단의 예산을 25% 깎아 버렸다.

    박 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세종문화회관을 서울의 25개 자치구와 연계하는 공연예술의 허브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박 사장의 이같은 방침은 찾아가는 공연, 시민의 눈높이에 맞춘 공연에 회관 운영의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으로 풀이됐다. 이어 박 사장은 산하 9개 예술단의 자치구 순회공연과 지역의 문화예술 발굴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박 사장의 방침에 따라 회관은 연계사업팀과 문화예술교육팀을 신설했다. 그리고 사업예산 마련을 위해 산하 예술단의 올해 예산을 25% 삭감했다.

    예산이 줄어들면서 산하 예술단 중 오페라단은 4월에 공연 예정이던 '돈 조반니' 를 하반기로 미뤘다. 뮤지컬단은 지난달 예정된 ‘벌거벗은 임금님’ 공연을 아예 취소했다.

    갑작스런 예산 삭감에 반발한 김효경 서울시 뮤지컬단 단장과 박세원 서울시 오페라단 단장은 지난 3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런 가운데 일어난 ‘광화문 별밤 축제’의 폐지는 회관의 난맥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회관의 대표적 문화공연 행사로 자리매김한 이 행사는 지난 8년 동안 시민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아왔다. 올해도 회관은 지난 5월초부터 행사를 시작하려고 기획했으나 박 사장이 공연 1주일을 앞두고 취소를 지시했다.

    대신 박 사장은 시민이 참여하는 소규모 문화공연을 지시, 현재 회관 잔디공원에서 ‘2012 광화문 문화마당’이란 이름의 행사가 열리고 있다.

    모두 140여개의 크고 작은 세부공연이 열리는 별밤 축제에 들어가는 예산은 10억원, 이 중 시 지원예산은 6억원이다. 회관은 지난해 부족한 예산을 현대기아차의 협찬금으로 메웠다.

    기획안을 만든 직원들은 올해도 현대기아차의 협찬금 4억원을 포함, 같은 규모의 예산을 편성했다.

    여기서 박 사장은 직원들과 갈등을 빚었다.

    당초 박 사장은 권위적인 무대 규모, 광화문 광장과의 시야 단절, 스폰서 기업 광고의 지나친 노출 등을 이유로 기획안에 대한 수정을 지시했다.

    그러나 공연기획을 맡은 직원들은 박 사장의 수정요구에도 불구, 같은 안을 다시 제출하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결국 박 사장은 현대기아차의 지원을 거부한 채 순수한 시민참여형 행사를 지시했다.

    이에 대해서는 기업의 협찬금 지원방식과 회계처리 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회관 직원들의 태도를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직원들의 저항 이면에는 박 시장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산하 예술단에 대한 예산 삭감, 공석 중인 단장 선임과정에서 일어난 인사 잡음 등 취임 후 박 사장이 보여준 독단적인 일처리 방식에 대한 불만이 지시 거부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박 사장이 정치적 성향에 따라 회관을 독단적으로 운영한다는 비난도 있다.

    현제 별밤 축제 주무대가 설치될 예정이었던 회관 중앙계단에는 민중 미술가인 임옥상 작가가 만든 ‘농사와 예술’이란 작품이 설치돼 있다. 임 작가는 지난 2001년 박 사장과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반대하며 1인 시위를 벌인 인물이다.

    인사 잡음도 계속되고 있다.

    박 사장은 4월 23일 공석 중인 서울시 뮤지컬단 단장에 유인태 민주통합당 의원의 동생인 유인택 군장대 석좌교수를 임명했다. 유 단장 선임 당시 회관 주변에서는 박 사장과 유 의원의 친분설이 나도는 등 신임 단장 임명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또 새로 만든 문화예술교육팀장에는 박 사장이 예술감독으로 있었던 극단 현장의 어연선 대표가 임명됐다.

    상황이 갈수록 꼬이면서 박 사장의 ‘불통’ 행정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박 사장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부 단장 등 직원들과의 대화에 나서는 모습도 보였지만 결과는 없다.

    산하 예술단의 잇따른 공연 취소와 단장 사임, 검증되지 않은 사업 추진, 별밤 축제의 돌연 취소와 직원들의 내부 반발, ‘제 식구 앉히기’에 대한 인사 잡음...

    박 시장의 멘토가 수장을 맡은 한국의 대표적 문화공연시설, 세종문화회관이 뜻하지 않은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