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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말한다. 탈북자 북송(北送) 방침을 굳힌 중국 공안 당국을 움직이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고‥.
그러나 계란이 수천, 수만개가 모인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적어도 바위 전체를 노랗게 물들이는 변색(變色)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여기, 자신의 온 몸을 바위에 부딪혀 노란 혈흔을 남기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아직도 바위를 움직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오만한 중국을 움직이기 위해 작은 발걸음을 내딛인 박선영 의원의 뒤를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이 이었고, 김석원 평양시민회 회장 등이 현재까지 식음을 전폐하며 단식 농성을 전개하고 있다.
가녀린 체구의 '전사'들이 앞장서자 드디어 평범한 시민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대학생, 직장인, 가정주부‥.
심지어 장애인과 외국인마저 "탈북자들의 인권을 보호해달라"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평소 주변인 정도로 치부받던 이들이 가장 먼저 '탈북자 지킴이'로 나선 것은 평범한 우리들을 너무나도 부끄럽게 만든다.
오늘도 마음이 미동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기 위해‥.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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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후 2시, 중국대사관 맞은편 옥인교회 앞에 모여든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집회 참가 시민들.
◆"탈북자는 내 이웃" 일본인도 뜨거운 관심 표명
17일 열린 시위는 <탈북난민구출네트워크>가 주최한 집회가 오전을 책임지고, 오후엔 교회 청년들과 일반 시민이 어우러진 축제 한마당이 펼쳐졌다.
매스컴을 통해 시위 현장이 매일 생중계 되고 외국인과 젊은 대학생들의 참여가 두드러지면서 촛불문화제의 성격도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효자동 옥인교회 앞에, <참가치개인연대> 회원들과 나란히 도열한 일본인들도 그 '변화의 중심'에 섰다.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한·일인 모임>에서 나온 십여명의 일본인들은 국경을 초월한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몸소 보여줬다.
이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한국인들과 정기적인 토론을 벌이는 회원들로, 가까운 나라 일본이 탈북자 인권과 강제북송 문제를 외면해선 안된다는 공통된 시각을 갖고 있었다.
현재까지 5일째 단식 중인 <탈북자와 함께하는 꿈연대>의 회장 와다 신스케씨는 "요미우리 신문의 한 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제가 여기서 단식을 한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알았는지 취재를 하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만일 일본의 여론이 '탈북자의 인권 존중' 쪽으로 흘러간다면 향후 중국 정부가 받는 압력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신스케씨를 비롯한 외국인들의 활약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중국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주요 수단 중 하나가 바로 국제사회 여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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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회가 끝나고 <중국정부 탈북난민 강제북송 중지 및 국제협약준수 촉구 100만인 서명>에 동참하고 있는 시민들.
◆"탈북자 북송 반대 서명, 외국인이 더 적극적"
더욱 고무적인 일은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서명'에 오히려 외국인들이 더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탈북난민구출네트워크>에 따르면 지난달 15일부터 온라인에서 시작된 <중국정부 탈북난민 강제북송 중지 및 국제협약준수 촉구 100만인 서명>에 참가한 17만5,540명 중 외국인의 비중이 대한민국 사람들보다 더욱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광자 간사는 "현재 온라인(www.savemynk.net)에서 진행 중인 서명에서 외국인들이 많은 동참을 해 오고 있다"며 "탈북자 강제북송에 관한 문제는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탈북자 북송을 막기 위한 서명운동은 오프라인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달 27일부터 옥인교회 앞에서 받고 있는 서명에는 벌써 4,000명 가까이 서명했다. 하루에 200명 이상이 집회에 참가, 서명을 한 셈이다.
전 간사는 "홍보가 잘 안된 탓인지 집회에 오신 분들 중 3명에 1명꼴로 서명을 하고 있다"며 "실제로는 4,000명보다 더 많은 인원이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를 위한 집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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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후 7시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촛불 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
◆촛불 문화제에 '파워트위터러', '현역 군인'도 등장
저녁 7시에 속개된 촛불 문화제에는 40여명의 시민들이 합세해 열띤 분위기를 이어갔다.
월드와이드 교회에서 나온 청년들은 다채로운 공연을 준비해 '문화제'라는 이름에 걸맞는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였다.
이날 집회에는 단체 소속이 아닌, 개인적으로 참가한 시민들이 많이 보였는데 이들 중에는 제대를 10여일 앞둔 군인도 있었고 17만3,000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파워 트위터러도 있었다.
현재 모 부대에 복무 중인 A씨는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 군인"이라며 "언론에 노출되는 것은 좀 위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느냐는 말에 그는 "제대를 하면 바로 친구들을 모아 젊은이들이 대거 참석하는 촛불문화제로 만들고 싶다"며 "지금보다 더 재미있는 촛불문화제를 만들어 젊은이들이 탈북자 문제에 무관심하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파워 트위터러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청년은 "현재 트위터를 비롯한 SNS가 지나치게 일방적인 의견들로 가득하다"며 "파급력이 높은 SNS가 편향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원래 밖으로 잘 나다니지도 않는데 이렇게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실명을 거론하지 말라고 부탁하며 "현재 온라인상 공격을 많이 받고 있어 실명이 나가면 실제 위협이 가해질 수도 있기에, 보도에 신중을 기해줬으면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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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후 7시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춧불문화제에 모인 시민들.
◆이애란 원장, 와다 신스케씨 만나 위로
한편 이날 집회에는 반가운 얼굴이 어김없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바로 옥인교회 앞에서 18일간 단식농성을 감행하다 지난 11일 병원에 후송됐던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소 이애란 원장이 촛불문화제 현장을 또 찾아온 것이다.
이 원장은 일본인으로 5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일본인 와다 신스케씨를 응원하기 위해서 나왔다고.
그는 "단식하고 10kg이 빠졌었는데 5일 만에 10kg이 다시 쪘다"는 경험담을 전한 뒤 "정말로 고생을 많이 하시고 계신다"며 진심어린 걱정을 했다.
이 원장의 방문에 신스케씨도 한층 기운이 나는 모습이다. 신스케씨는 "이렇게 마음이 따뜻한 분들이 많이 계신 만큼,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거라 생각한다"며 "더 많은 분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응원해 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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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 이애란 원장과 와다 신스케.
글/사진 윤희성 기자 ndy@newdail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