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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였다.
19일, 서울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은 날씨가 몹시 매서웠다.
그런 이날도 '탈북자 강제북송 저지'를 촉구하는 문화제가 열렸다.
"북송반대와 더불어 북한인권법 제정촉구도 함께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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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얼마되지 않았다. 정말 날씨가 추웠나보다.
그래도 사람이 많았을 때와 별 차이는 없었다. '내 친구를 살려주세요'란 구호는 중국대사관에 충분히 전달됐다. 구호를 외칠 때 다들 목청이 터지도록 외쳤기 때문이다. 다들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이날 사회 각계 백여명으로 구성된 ‘탈북난민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이 자리에서 출범을 선언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탈북자 북송반대운동을 더 큰 국민운동으로 발전시켜 반드시 중국정부의 강제북송이 중단되도록 할 것이다. 사회각계인사들이 나서 ‘탈북난민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되기로 했으며 '천만인서명운동'을 시작하게 됐다"며 취지를 밝혔다.
이어 "북송반대와 더불어 북한인권법 제정촉구도 함께하고자 한다. 야당이 북한인권법 제정에 머뭇거리는 이유는 북한을 자극하기 때문이었는데, 이미 북송반대 여론이 북을 충분히 자극한 상황에서 더 이상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정진석 추기경과 자승스님도 참석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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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라우스와 태국으로 떠나는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도 이날 문화제에 참석했다. 그는 "동남아시아에 도착한 난민들을 뵙고 그들의 탈북 과정을 생생히 듣고 오겠다. 또 3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국에 오지 못하는 탈북자들을 만나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가고 있다. 여러분들이 모임을 만들어주시고, 천만명 서명운동을 전개해주신다고 하니 뿌듯하다. 북조선난민구원기금(대표 가토 히로시)도 함께하셔서 국제연대를 통해 탈북난민들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희소식도 들렸다. 박 의원은 "정진석 추기경과 자승스님께서도 현재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와 관련, 협의중이라고 하신다. 국민들이 몸과 마음을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박 의원은 전날까지만해도 정 추기경의 활동에 기대를 접은 모습을 보였었다.
"35번째 문화제... 갈수록 참석자 줄어들어"
문화제는 35일째를 맞이하였지만 모든게 다 부족하기만 했다.
우선 재미가 없다. 흥미를 끄는 이벤트도 없고, 발언하는 사람들은 말을 잘하지도 못해 감동적이지도 않다.
관심도 적다. 정치권의 반응도 미지근하다. 유명인들의 참여도 뜸하다. 이날 오후 촛불문화제에 온 기자는 기자 한 명 뿐이었다. 탈북자를 위한 문화제 관련 기사는 주요 기사로 나오지도 않는 상황이다. 사진만 몇 장 나올 뿐이다.
불협화음도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이곳을 자신들의 홍보 장소로 이용하는 사람들과 단체들에 실망스럽다며 돌아서는 참석자들도 있다. 한 대학생은 "단체 홍보하느라 여념이 없다"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래서 그들이 더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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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와서 혼자 서 있는 한 대학생에 "혼자 왔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정치와 사회 문제에 별다른 관심은 없어요. 그저 탈북자 문제에 관한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됐고 이후에 탈북자들의 기사를 자주 찾아봤어요. 그러다보니 저도 모르게 이곳까지 오게됐어요."
그가 처음 본 기사는 지난 4일 ‘크라이 위드 어스’(Cry with us·우리와 함께 울어요)가 중국의 탈북자 북송에 반대하기 위해 연 콘서트 기사였다.
유명 연예인들의 활동이 정말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된 조직도 없는 문화제에 개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탈북자들이 얼마나 북한에서 살기가 힘들었으면 탈북했겠어요"라고 덧붙이며 자신이 읽은 탈북자들의 기사를 설명해줬다. 그는 다양한 사연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동반으로 참석한 한 부부는 문화제가 시작한지 10분 쯤 지나 도착했다. 이들은 "오늘 처음 참석했다"고 했다. 낯설었는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기사를 보고 왔어요. 북한 주민들이 정말 잔인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홀로코스터(유대인 대학살)에 침묵해 더 큰 피해가 생겼는데, 그 역사가 반복되는 느낌이 들어 급한 마음으로 나왔어요."
이어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도와줄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시켜달라"며 이곳에 오면서 생각한 아이디어를 알려주기도 했다.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탈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였다.
"우리의 사랑이 보이도록... 문을 열어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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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18일째 쓰러졌던 이애란 북한음식연구원장도 참석했다. 그는 "건강이 많이 회복돼 이제는 회사에 나가 일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퇴근 후 이곳을 찾은 것이었다.
이날 이호택 사단법인 피난처 대표가 촛불문화제 사회를 맡아 진행했다. 이 대표는 "피난처에서 작사/작곡한 곡을 소개한다"며 '문을 열어두세요'란 노래의 가사가 적힌 종이를 나눠줬다.
이 노래를 작곡한 이원지 피난처 간사는 "탈북자들을 위한 대표적인 노래가 마땅히 없어 이틀 동안 열심히 작업했다"며 노래를 불렀다. 참가한 사람들이 쉽게 따라부를 수 있을만큼 쉬운 노래였다.
"문을 열어두세요.
우리의 함성소리 퍼지도록...
그들의 한숨소리 들리도록...
우리의 친구들이 숨쉬도록...
우리의 사랑이 보이도록...
문을 열어두세요."노래는 계속됐다. 참석자들은 무대에 올라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들이 부른 노래는 모두 잔잔했지만 멀리까지 울려퍼졌다.
문화제가 끝나고도 중국대사관엔 불이 켜져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