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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93점짜리 선수였다. 많은 것을 이루고 떠나 행복하다”
프로농구 원년멤버 추승균(39·전주KCC이지스)이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KCC 본사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정들었던 농구코트에서 한 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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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승균(왼쪽) 선수와 허 재 감독.
추승균은 “욕심을 내면 조금 더 뛸 수 있지만 좋은 모습을 보여줬을 때 영광스럽게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지난 몇 달간 생각했다”며 “프로농구에서 15시즌동안 경기를 많이 소화했고 큰 부상 없이 선수생활을 한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허 재 감독은 “선수생활과 은퇴, 나도 그 마음을 잘 안다. 지금은 감독 입장이라 여전히 좋은 선수인 추승균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선수를 정상에서 은퇴시켜주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감독의 의무라고 할까. 감독으로서 아쉬움은 굉장히 있지만 이게 끝이 아니고 제2의 농구인생이 있기에 그를 보내준다”고 말했다.
허 감독은 팀 내 베테랑 선수가 꼭 필요한 시점이지만 추승균의 은퇴의사를 존중했다. KCC는 귀화혼혈드래프트 규정에 따라 전태풍이 다음 시즌이면 다른 팀에서 뛰어야 한다. 국내 최장신 센터 하승진도 군복무 때문에 허감독과 잠시 결별해야 하는 상황이다.
추승균은 "어린 후배들에게 기회가 더 많이 생겨서 팀이 더 좋아질 것"이라며 "프로는 한 만큼만 얻어가는 것이기에 부지런히 연습하고 끊임없이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고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 추승균 "2인자인게 오히려 감사"
추승균은 부산의 농구명문인 대연중, 부산중앙고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프로농구가 생기기 직전, 농구대잔치와 드라마 ‘마지막 승부’를 통해 농구팬들이 급속도로 늘었던 시기에 선수생활을 했지만 늘 이상민, 우지원, 문경은, 서장훈, 현주엽 등 스타플레이어들에게 가려 팬들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양대 부동의 에이스로 성장, 프로원년인 1997년 현대 다이넷에 입단했다. 그간 정규리그 우승 3회, 챔피언 결정전 우승 5회를 이뤄내며 프로에서 ‘소리없이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고 프로농구 올스타 선발에 총13회나 선발되면서 기복없는 인기도 과시했다.
또 12년간 국가대표를 지낸 추승균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선 중국의 만리장성을 넘고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인자가 아닌 1인자였던 순간이었다.
KCC에서 2008-2009년 주장으로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끌어 낸 것을 추승균은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다.
하지만 그는 ‘소리없이 강한 남자’, ‘2인자’라는 그의 별명에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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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승균은 “2인자라서 좋았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화려하게 농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팀을 위해서 때로는 궂은 일이나 수비에 집중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한 플레이가 팬들의 뇌리에는 ‘2인자’라고 박혀버린 것 같다”며 “나에게 그런 이미지가 운동생활이나 사생활에서 더 겸손하게 충실하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 같다. 오늘이 있기까지는 어찌보면 '별명'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추승균은 스스로 자신을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나는 93점짜리 선수였다”며 “나머지 7점은 정규리그에서 MVP를 받지 못한 것 때문에 남겨뒀다”고 말해 현장 분위기를 즐겁게 했다.
◆ 15년 팬 황진화씨 "추승균 얼굴만 무뚝뚝 알고보면 다정다감"
무뚝뚝한 이미지의 '부산사나이' 추승균의 진면목은 그간 코트에서 보여진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15년간 추승균의 팬으로 지냈다는 황진화씨는 “승균 오빠는 정말 보는 것과는 다르다”며 “팬들에게 무심할 것 같지만 정말 다 해주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황씨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추승균은 팬미팅에 참가한 40명의 팬들의 이름을 1시간30분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모두 외웠을 정도로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대전이 집이라는 황씨는 전주가 고향인 팬들과 함께 서울로 은퇴식에 참가하기 위해서 찾아왔다.
20분 안팎에 불과한 기자회견을 보기 위해 먼길을 마다않고 달려와준 팬들을 보며 추승균 역시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한번 오빠는 영원한 오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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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팀에서 3년간 호흡을 맞춰온 전태풍은 “승균이 형은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진짜 남자’예요”라고 말하며 “3년간 정말 감사했어요”라고 말했다. 한국어가 아직 서투른 전 선수의 입에서 '진짜 남자'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도 의외였지만 길지 않은 말에서도 진심이 느껴졌다.
글/사진 윤희성 기자 ndy@newdail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