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를 비롯해 아시아 연구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히는 로버트 스칼라피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니아 주립대 명예교수가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버클리대는 2일 교수 일동 명의로 "깊은 슬픔과 함께 스칼라피노 교수가 지난밤 별세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 1919년 미국 캔자스주 리븐워스에서 태어난 스칼라피노 교수는 샌타바버라대를 졸업하고 1948년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잠시 모교에서 강의한 것을 빼고는 다음해부터 버클리대에 재직하며 반세기 넘게 교수로 활동했다.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아시아를 연구하기 시작한 1세대 학자에 속한다. 그는 한국과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의 정치ㆍ사회 변화에 큰 관심을 갖고 최근까지 활발한 연구를 계속해왔다.

    특히 1978년 버클리대 동아시아 연구소를 세워 1990년 소장을 맡았으며, 그 사이에 '한국 공산주의운동사', '김일성' 등 한반도와 관련된 저서를 출간하는 등 한국의 현대사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북한도 6차례 방문하는 등 남북관계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또 '현재 일본정당과 정치',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 등 아시아 문제와 관련된 39권의 저서와 수많은 논문을 펴냈다.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3차례 연구교수를 지냈고, 중국이름(施伯樂)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버드 시절 미국과 유럽에 관심을 갖던 그가 아시아 쪽으로 눈을 돌린 계기는 2차 세계대전이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그는 아시아로 연구분야를 바꿨으며, 1943년부터 3년간 해군장교로 복무하며 일본어를 익혔다. 지난해 구순을 맞아 출간한 회고록 성격의 저서 '신동방견문록-리븐워스에서 라싸까지'에서 "2차대전 발발 이후부터 아시아는 내 인생이었다"며 당시의 과정을 소상하게 소개했다.

    스칼라피노 교수와 한국의 인연은 각별했다. 그가 한국 연구를 시작하게 된 건 대학원 제자였던 이정식(80) 미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 겸 경희대 석좌교수의 권유였다고 직접 밝힌 적이 있다. 한국내에 많은 제자들이 있으며 한국 문제에 대한 정치적 조언도 기회있을 때마다 했다.

    고려대 명예교수인 한승주 전 외무장관, 이정식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석좌교수 등이 그의 제자다. '신동방견문록' 번역 역시 제자인 최규선 유아이에너지 대표가 맡았다.

    1959년 그가 미국 상원에 제출한 한국 관련 보고서에서 군사 쿠데타 발생 가능성을 '예측'한 것은 학계에서 전설로 통한다. 그러나 그런 그도 보고서가 나온지 불과 2년만에 군사쿠데타가 일어날 것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정식 교수와 지은 '한국 공산주의운동사'(1973)는 한때 독립운동사에서 금기시됐던 김일성의 일제 강점기 항일 운동 문제를 수면위로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1990년 정년 퇴임한 후에도 버클리대 종신 명예교수로 활발한 활동을 계속했다. 작고하기 전까지도 버클리대 동아시아연구소에 사무실을 갖고 있었다.

    지난해 6월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신동방견문록'에서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첫인상은 단순하고 전통적인 정치관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었다고 회고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유신헌법과 독재정치는 장차 일어날 미군 철수에 대한 대비책이었다고 분석했다.

    또 1973년 일본에 망명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처음 만났으며 이후 수감된 김 전 대통령을 지지하고자 이희호 여사를 찾아간 일도 소개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1989년 여름 처음 북한을 방문한 뒤 받은 인상은 "외부 세계와 완벽하게 차단된 기이한 사회라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한반도 통일 전망에 대해서는 "북한의 붕괴나 전쟁이 발발하지 않는 한 한반도 통일은 당분간 불가능해 보인다"고 내다봤다.

    미국과 함께 G2(주요 2개국)로 부상한 중국에 대해서는 "현재의 추세가 계속되면 20-30년 후 경제력에서 중국이 미국을 초월해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면서 그러나 극심한 빈부갈등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고 공산당의 독재도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