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한국광복군 창군 제71주년 기념행사 열려백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기념식․학술강연회 개최
  • 보훈처는 14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으로 창설된 한국광복군의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고 국민의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한국광복군 창군 제71주년 기념식 및 학술강연회가 15일 오전 11시 백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한국광복군동지회(회장 김영관) 주관으로 열린다”고 밝혔다.

    이날 기념식에는 우무석 국가보훈처 차장, 박유철 광복회장, 이재관 재향군인회 육군부회장, 광복회원, 학생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광복군동지회장의 기념식사, 국가보훈처 차장·광복회장·재향군인회장(부회장 대독)의 축사에 이어 신광여자고등학교 학생대표의 광복군 창군 선언문 낭독, 3․1여성동지회 합창단의 독립군가 합창,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된다. 기념식에 이어 한시준 단국대 교수의 ‘한국광복군의 역사적 위상’을 주제로 하는 학술강연회가 열린다.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군으로 중국 중경(重慶. 충칭)에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식(成立典禮式)을 거행했다.

    우리 손으로 독립을 이루기 위해 대일항전을 전개한다는 목적으로 창설된 한국광복군은 4개 지대로 편성되어 이 중 일부는 영국군과 함께 1944년 3월 임팔(Imphal) 전투에 참전하는 등 등 1945년 7월까지 미얀마에서 대일작전을 수행했다.

    또한 일부는 미국 CIA의 전신(前身)인 전략첩보국(OSS)과 함께 특수공작 훈련을 받고 국내진공작전을 추진하였으나 일제의 항복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일제 항복 후 광복군 정진대(挺進隊)를 편성, OSS 미군 18명과 함께 C-47 수송기로 8월 18일 국내에 진입하였으나, 일본군의 저항으로 중국으로 돌아갔으며, 이후 임시정부와 함께 한인교포 등을 보호하여 국내에 송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946년 5월 16일 광복군은 복원선언(復員宣言)으로 해산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원들은 국방경비대 요원으로 참여해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