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국가 논의 끝에 설탕세 대신 등급표시제 도입D등급 제품에 강력한 규제 … 기업차원 '리포뮬레이션' 본격화전체 음료 중 중간 당 함량 35% 낮아져
  • ▲ 싱가포르 내 한 편의점에 진열된 음료. 하단에 뉴트리그레이드가 표기돼있다.ⓒ조현우 기자
    ▲ 싱가포르 내 한 편의점에 진열된 음료. 하단에 뉴트리그레이드가 표기돼있다.ⓒ조현우 기자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설탕세 도입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국내에서도 당류 과세를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싱가포르 역시 2018년 설탕세 도입을 검토했지만 최종적으로 비재정 정책으로 선회했다. 시민과 이해관계자, 학계 등의 의견수렴을 통해 영양등급 표시와 광고 규제에 대한 지지가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신 싱가포르는 시장 구조 자체를 바꾸는 방식을 선택했다. 약 7여년이 지난 지금, 싱가포르 음료 시장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직접 살펴봤다.

    지난 2월 8일부터 10일까지 사흘간 싱가포르 내 위치한 쇼핑몰과 마트, 편의점, 프랜차이즈 카페 등을 둘러봤다.

    눈에 띄는 것은 당 함류량에 따른 표기였다. ’A~D’ 등급으로 나눠 소비자들이 직관적으로 당 함유량을 알 수 있게 표기한 것이다.
  • ▲ 쇼핑몰에 위치한 카페 브랜드의 입간판에서도 쉽게 등급표기를 확인할 수 있다.ⓒ조현우 기자
    ▲ 쇼핑몰에 위치한 카페 브랜드의 입간판에서도 쉽게 등급표기를 확인할 수 있다.ⓒ조현우 기자
    싱가포르 보건부(Ministry of Health)에 따르면 A등급은 100㎖ 당 당 함량이 1g 이하인 경우에만 표기할 수 있다. B등급은 1~5g 이하, C등급은 5~10g 이하다. D등급은 10g 이상인 경우다.

    D등급 음료의 경우 온라인과 TV, 서적 등 모든 대중 매체에서 광고가 금지된다. 단순히 세금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고당 음료의 ‘노출 자체’를 줄이는 강력한 조치다.

    실제로 이 뉴트리그레이드(Nutri-Grade)는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편의점에 진열된 음료에서부터 스타벅스 등 유명 커피 브랜드 메뉴판, 음식점의 QR 주문판에서도 모두 찾아볼 수 있다.

    싱가포르 역시 설탕세 도입을 검토했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한 ‘설탕과다 음료 소비 감소를 위한 공공의견 수렴’에서 싱가포르 정부는 ▲전면 설탕세(SSB tax) ▲전면 고당음료 판매 금지 ▲영양표시 의무화 ▲광고 규제 등을 제시했다.
  • ▲ 설탕세 도입을 위한 공공의견수렴 당시 싱가포르 정부가 제안한 4개 규제ⓒMOH
    ▲ 설탕세 도입을 위한 공공의견수렴 당시 싱가포르 정부가 제안한 4개 규제ⓒMOH
    대상은 일반 시민과 의료 전문가, 학계, 제조업체와 유통·소매업체, 정부 의견수렴기구와 현장 의견 청취, 대면 세션 등을 통해 4000건 이상의 응답을 수렴했다.

    결과 응답자의 89%가 과도한 설탕섭취가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지적했으며, 또 84%는 소비자가 섭취하는 제품에 정보에 입각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의무적인 제품 포장 전면 라벨 표시를 지지했다.

    71%는 광고 규제를 지지했다.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한 소비세 부과와 고당 음료 판매 금지는 65%와 48%였다.

    싱가포르 정부는 의견수렴을 거쳐 설탕세가 아닌 광고 규제와 등급 표기제로 선회했다. 싱가포르 보건부는 뉴트리그레이드를 도입하면서 “가격 인상(세금) 대신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광고 영향력을 줄이는 조치”라고 밝히기도 했다.

    과세 정책이 아닌, 단순히 음료에 당 함량 등급을 표기하는 것만으로 실질적인 효과가 있었을까.
  • ▲ 싱가포르는 식당에서 QR코드를 통한 주문 방식이 일반화돼있다. 어플에서도 손쉽게 당 함량을 확인할 수 있다.ⓒ조현우 기자
    ▲ 싱가포르는 식당에서 QR코드를 통한 주문 방식이 일반화돼있다. 어플에서도 손쉽게 당 함량을 확인할 수 있다.ⓒ조현우 기자
    가장 큰 변화는 제품에서 시작됐다. 당 함량을 10g 이하로 낮춰 D등급을 벗어나려는 리포뮬레이션(제품 재배합)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

    실제로 싱가포르 보건부 자료에 따르면 현지에서 판매되는 전체 음료 중 중간 당 함량은 2017년 7.1%에서 2023년 4.6%로 약 35% 낮아졌다. 이는 단순히 소비자가 덜 마신 것이 아니라, 시장에 유통되는 제품 자체의 당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등급 분포 변화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전체 음료 판매량 중 A·B 등급 비중은 37%에서 69%로 확대됐다. 절반을 넘던 중·고당 음료 비중이 구조적으로 낮아진 셈이다.

    효과는 확실했다. 싱가포르 정부의 국민영양조사에 따르면 싱가포르 국민의 하루 평균 총 설탕 섭취량은 2018년 60g에서 2022년 56g으로 줄어들었다.

    2018년 ‘소프트 드링크 산업 부담금’을 도입한 영국의 경우 조세조치 이후 음료 평균 당 함량이 약 30%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싱가포르의 뉴트리그레이드 도입 이후 변화한 수치와 비슷한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핵심은 세금 부과 여부가 아니라, 정책이 시장 구조를 얼마나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라면서 “(싱가포르의 경우) 조세가 아니더라도 당 섭취를 낮출 수 있다는 실제 사례로 풀이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