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근찬 한국사이버대 교수.ⓒ뉴데일리
    ▲ 문근찬 한국사이버대 교수.ⓒ뉴데일리

    대학의 등록금 문제를 놓고 고차원 방정식처럼 해법이 없다는 말이 유행이다. 하나의 해법이 다른 문제를 유발하는 복잡한 문제라는 뜻이겠지만 이는 생각을 깊이 하지 않은 무책임을 반영하는 말이기도 하다. 문제가 단순한 상충관계(trade-off)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은 그보다 고차원의 근본 원인이 있다는 뜻이다. 근본 원인을 알았다고 해서 그 해법이 쉽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학 등록금의 고(高)비용 구조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지름길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대학 등록금이 비싸다고 느끼는 것은 사실이라고 일단 가정한다면,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마도 대학교육이 제 값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오늘의 현실을 보면, 대학을 나와도 취직도 안 되니 정말 비싸다고 느낄 만도 하다.

    대학 등록금이 효용에 비해 비싸면 대학을 안 가면 되고, 그 결과 학생을 못 채운 대학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하는 것이 시장의 원리다. 하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대학은 일단 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비싼 등록금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은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났다.

    이 부분에 원인과 결과 간의 부조화가 발생한다. 효용이 기대에 훨씬 못 미치지만 그래도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이다. 그런데 모든 학생, 학부모가 불합리하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우므로 그들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일단 대학을 가려고 하는 것은 뭔가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으로 봐야 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신분상승의 가능성’일 것이다. 일단 대학을 나와야 소위 잘나가는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사(士)자 붙은 직업을 가질 가능성이 커진다. 자식의 입신출세라면 논밭을 팔아서라도 뒷바라지 하던 한국의 부모들인지라 그런 점에서는 비싼 등록금이 비싼 것이 아니다. 결국 비싼 등록금의 원인은 누구 탓이냐 하면 바로 한국 사람의 마인드 탓이다.

    신분상승의 가능성에 목숨을 매는 한국사회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오늘날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온갖 사회문제의 뿌리가 무엇인지 짐작이 간다. 한국사회는 아직 민주시민의 사회가 아니라 양극화된 신분 대립의 사회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서구의 시민혁명과 같은 투쟁과 희생을 겪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한국사회는 조선 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양반-상민의 신분 문화가 여전히 건재하여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지금은 대기업에 들어가든지, 혹은 공무원 내지 '士'자 직업을 가지게 되면 양반이다. 반면에 중소기업에 들어가는 순간 예전의 상민처럼 양반으로 신분 상승하기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중소기업의 납품가를 후려친다는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공정거래가 늘 문제가 되고, 공무원들이 중소기업을 스폰서로 내세워 주말 골프까지 치고 온다는 연찬회 문제가 불거지는 현실을 보면 반상 제도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반으로 태어나면 당연히 상민을 수탈하는 것으로 수 백 년을 살아 온 조선시대의 전통이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 있는 것이다.

    사람의 성격이 잘 안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라는 것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위와 같은 일을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문화에서 축적된 DNA가 이런 일이 응당 당연하다는 신호를 보내기 때문에 그렇게 군림하고그렇게당해주는것이다.

    다시 대학의 실질적인 효용이라 할 취업 문제로 넘어와서, 흔히 말하기를 논 높이를 낮춰서 중견, 중소기업에 들어가서 일 열심히 배우면 대기업보다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고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중소기업에 일단 들어가면, 예전에 신분이 상민이면 죽을 때까지 상민인 것처럼 지금도 신분이 거기서 고정되는 것을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대졸자들은 실업 상태로 남아 있을지언정 끝까지 버텨 보는 것이다. 요컨대 한국사람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죽어라 하고 대학에 가려고 하는 것은 오늘날의 ‘新 반상(班常)’ 제도 때문이다.

    결국 해결책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비민주적인 현대판 반상 제도를 혁파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되며, 뭔가 정신적인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이 해법은 대학 등록금을 두고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해법들, 예컨대 정부예산을 더 투입하는 방안, 기부금 늘리고, 기부입학제를 실시하고, 지방대 진학을 유도하는 등의 대증요법적인 해법에 비하면 근본 해법에 속할 것이다.

    아마도 국가적인 과제로 ‘ 민주시민 되기’ 교육 같은 것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지도자로부터 사회의 주요 지도층과 시민에 이르기까지 그런 철학을 갖고 실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기업 등 사회의 주요 기관의 채용문화와 급여, 보상체계에는 단지 우수인재 채용이라는 단선적 기준에 더하여 자신들의 제도가 사회를 민주시민의 사회로 만드는데 공헌해야 한다는 책임이 포함되어야 한다. 교육계와 학부모도 가정교육과 공교육의 사명을 재 인식하여 단지 입시문제 풀이 전문가를 키우는 것이 아닌 민주시민으로 키우는 일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런 일이 단숨에 될 일은 아니지만 최소한 먼 길을 밝혀 주는 등대와 같이 우리 사회의 장기적 비전을 먼저 공유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구체적인 정책과 실천 방법들을 논할 때는 대책 없는 인기몰이로 치닫지 않고 최소한 장기적인 비전에 부합하는가를 먼저 판단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