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선진화 포럼--선진화포커스 56호>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달라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보고-
    전경웅/뉴데일리 기자

    지금 언론과 인터넷에서는 아나운서의 자살사건, 주한미군의 유독물질 매립사건 때문에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마치 잊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우리 국민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다.

       부산저축은행은 5개의 계열은행을 가진 거대저축은행이다. 이 곳 경영진들은 2005년부터 6년 동안 대주주 투자와 부동산 직접투자를 금지하고 있는 저축은행 관련법을 어기고 차명으로 120개의 특수목적회사(SPC)를 만들어 4조5,000억 원을 불법대출해줬다. 불법대출 중에는 170여 명의 임직원이 ‘아는 사람’에게 해준 ‘묻지마 대출’도 7,400억 원도 있다. 임직원들은 영업정지 전 일반 고객들이 예금을 인출하려 하자 집요하게 설득해 ‘피 같은 돈’을 ‘후순위 채권’으로 바꿨다. 결국 수천 명의 서민들은 자기 돈 대신 ‘휴지’ 조각만 받았다. 반면 ‘VIP’라는 ‘힘 있는 자들’ 4000여 명은 자기 돈을 고스란히 빼갔다.

       이 사건을 차근차근 조사하다보니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부산저축은행의 실소유주와 경영진들 대부분이 호남 출신에다 광주일고를 졸업했다는 점이었다. 불법대출을 결정한 사람, 로비를 한 사람, 로비를 받은 사람 대부분이 호남(광주일고) 출신이었다. 이들은 현 정권에서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 매체 대표가 ‘사건의 몸통은 광주일고’라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지역감정을 조장한다는 비난과 온갖 욕설, 저주였다. 대부분의 ‘악플’은 칼럼도 읽어보지 않은, 막무가내 ‘악플’이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보노라면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고 지연, 혈연, 학연에 집착하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이기주의와 탐욕이 합쳐지면 우리 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런데 이 문제를 지적하는 걸 ‘지역감정’으로 둔갑시키려는 사람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부산저축은행의 명예회장은 금호그룹 창업주의 장조카로 김대중 前대통령과는 목포상고 후배다. 그가 빼앗겼다는 ‘삼양타이어’는 지금의 ‘금호타이어’다. 이들이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던 때는 1990년대 후반부터였고, 불법 PF(프로젝트 파이낸싱)을 본격적으로 해준 건 노무현 정권 때였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다른 저축은행을 인수한 기록이 나온다. 그동안 이들을 비호하는 세력들이 생겼고, 그들이 지금까지도 국민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 지난 24일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이 금감원과 법원, 검찰 고위층들에게 로비를 해 수사를 막으려 했다는 증거가 드러나기도 했다.

       한 기자는 “부산저축은행은 업계 1위였다. 업계 1위가 이렇게 해먹었다면 다른 곳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대로라면 누구든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정의’에 목말라 있다. 국민들이 원하는 ‘정의’의 첫 번째는 ‘만인에게 평등한 법’이다. 한 때 대통령도 감옥에 집어넣었던 ‘대한민국 법’이라면 이런 범죄를 저지른 자들 정도면 ‘정의의 심판’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정치권, 언론,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나서던 ‘자칭 시민단체’들이 나서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 그게 바로 이 땅에 ‘정의’를 되살리는 첫 걸음이다. 이 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이번 저축은행 사건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불의를 척결해 나가는 능력을 보여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