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방관않는 100만 학도와 국민 있으니...나는 얼마나 행복한가...위로 편지 받을 이유 전혀 없다
  • 양아들 ‘사죄’ 해프닝을 보고

    김효선 /뉴데일리 이승만 연구소 사무총장


    역사는 참 재미있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역사적 사건 4.19의거 51주년 기념일에 일어난 작은 해프닝이 우리를 또 실소케 한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양자 이인수(이승만 기념사업회 부회장)가 4.19 묘지를 참배하고 희생자유족에게 ‘사죄’하려다가 반대에 부딪쳐 맥없이 물러나고 말았다.

    4.19 희생자 유족등 관련 단체들은 “진정성이 안 보이는 정치적 쇼”라며 한입으로 거부했다. 좌익 성향 역사학자들도 “동상 건립이 잘 안되니까 분위기 띄우려느냐”며 "전국민에게 모든 잘못을 사죄하라"고 들고 일어났다.

    ‘사죄’를 환영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사죄는 무조건 아름다운 것, 용기있는 사죄를 받아들여 화해할 때도 되었다”고 맞장구 치는 축도 있었다.

    정치권은 어김없이 거품을 물었다. 민노당은 물론이고, 평민당 한화갑대표는 한술 더 떴다. '이승만 유족이 사죄한다니 박정희 유족도 전두환도 사죄해라’는 주장을 폈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사죄한단 말인가. 무슨 죄가 그리 크단 말인가.
    이승만에게 죄가 있다면 죄값은 이미 충분히 치렀다. 대통령직을 즉각 스스로 사임했고 하와이에서 5년간 유배생활 끝에 죽었다. 당시 내무장관등 4.19 발포책임자들과 부정선거 주동자들도 처형되고 옥살이를 마친지 오래다. 희생자 유족들은 이런저런 보상을 받았고, 받고 있다.

    반세기가 지난 4.19는 이미 역사가 되었다. 역사는 역사로 대접하는 게 옳은 자세다.
    역사로 정리된 사건을 두고 “사죄한다느니, 못 받겠다느니” 시비하는 꼴은 역사에 대한 상식도 모르는 철부지거나, 어떤 특정목적의 정치장난으로 오해 받기 십상이다.

    4.19만이 아니다. 이승만 건국대통령도 이미 역사다. 아니 역사의 존재,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 인물의 과오를 모조리 트집 잡아 사죄를 받으러 들겠다면, 왕릉을 파헤치고 수천 수만명의 선조들을 부관참시(剖棺斬屍)라도 해야 할 것이다.

    이승만이 누구인가.

    미국과 싸우고, 소련과 싸우고, 정치 포퓰리즘과 싸워,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세운 사람이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공적을 열거할 필요도 없다.
    29세때 옥중 저서 <독립정신>을 썼다. 그리고 거기 쓴대로 일생을 살고, 거기 쓴대로 독립투쟁을 하고, 거기 쓴대로 ‘자유국가’를 만들고, 거기 쓴대로 나라를 전쟁에서 끝까지 지켜냈다. 마지막으로는 남북통일을 마저 이루기 위해 끝까지 발버둥친 인간이 이승만이다.

    한 인간이 젊은 시절 내면화했던 ‘자기와의 약속’을 이토록 실천한다는 것은 아무나 못한다.

    이승만의 한평생을 지배한 <독립정신>의 마지막 실천, 그것이 바로 4.19 ‘하야 성명’이다.

    1960년 4월26일 경무대로 찾아온 데모학생 대표들에게 이승만이 했던 말을 들어보자.

    “잘 왔네. 젊은이들이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나도 젊었을 때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많은 일을 했었지. 불의를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야. 이제 나가서 내가 하야한다고 말해도 되네. 어서 가보게.”

    그 시각, 라디오에서는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이 되풀이 방송되고 있었다.

    4월27일 이화장으로 돌아간 이승만에게 각국의 지도자들로부터 위로 전화와 격려편지가 쇄도했다.

    대만의 장개석 총통의 편지를 읽은 이승만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내가 왜 장 총통에게 위로를 받아야 하는가. 이 편지를 돌려 보내고 싶다. 불의를 보고 방관하지 않는 100만 학도가 있고 국민들이 있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이런 위로 편지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노라”고.

    이 실화는 자유당 정부 치안국장이었고 박정희 정권때 청와대 정무수석비서를 역임했던 전 국회의원 최치환씨가 1960년대 말경 밝힌 사실이다. 대만의 장 총통을 예방한 최치환씨에게 장 총통이 “이 편지는 한국 국민이 길이 보관해야 할 편지”라면서 이승만의 편지를 건네주었다고 한다.

    이승만은 왜 행복했던가.

    “백성들이어, 잠을 깨라. 눈을 떠라. 백성이 똑똑해져야 정치가 바로 서고 백성이 강해져야 나라가 강해지나니, 하루 속히 글을 깨쳐 동서 문물을 터득해야 나라의 독립을 지킬 수 있게 된다.”

    이승만이 108년전 <독립정신>책에서 수없이 되풀이 하는 말이다.

    구한말은 말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 건국 당시만 해도 한국의 문맹율은 80%를 넘었으며, ‘중학교 졸업’ 이상 학력자가 2만7천명 정도라는 기록도 있다. 그가 1948년 <한글전용법>을 만든 이유를 알겠는가. 이승만을 저주하는 친북좌파들도 ‘교육대통령’의 공적까지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4.19 데모 학생들은 이승만이 꿈꾸던 그 백성, 10년 의무교육이 길러낸 ‘젊은 사자들’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승만의 4.19 하야를 두고 ‘자기 성공의 실패자’라고 말한다.

    이승만은 그러나 장총통에게 말했듯이 4.19는 그의 마지막 성공, 똑똑한 백성을 만들었다는 마지막 꿈의 현실화를 눈으로 확인한 놀라운 기쁨, 마지막 행복이 아니겠는가.

    아직도 우리는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운위하고 있다.
    수많은 외국 지도자들이 이미 위대한 세계적 지도자로 평가를 내린 ‘우리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남북한만 정치적 이용물로 난도질하고 있다. 참으로 못나고 싸가지 없는 종족이 아닐 수 없다.

    양아들이 사죄한다고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질까.
    그 순진한 사죄마저 친북좌파들의 ‘대한민국 죽이기’ 호재로 또 한번 악용될 뿐이다.

    한국 역사학계는 좌파세상이 된지 수십년, 그들이 편찬한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보라.
    대한민국 건국역사는 간 곳 없고 ‘이승만 독재’와 ‘4.19혁명’만 판을 친다.

    단어 몇 개 수정했다고 그대로 교육하라는 정부, ‘反대한민국-친북한’ 교과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국사 필수화’를 외치는 한나라당, 정부-여당이 앞장서서 국민세금으로 반역-망국 교육을 하는 나라가 이 세상 어디 있단 말인가.

    친북-종북세력의 종주국 북한의 프로그램대로 진행되는 한국의 역사교육, 북한이 망하면 남한 역사가 바로 잡힐 것인가. 역사 교육이 이럴진대 남한이 먼저 망하지 않는다면 기적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