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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국방부는 ‘국방개혁과제’ 일명 ‘307계획’을 발표했다. 언론들은 이 ‘계획’ 내용들을 전하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역시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307계획, ‘포장’은 확실히 예뻐
‘307계획’에서 밝힌 과제 제목만 보면 향후 20년 동안 우리 군은 ‘동북아 최강’의 정예군이 될 것 같다.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합동성 강화,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응하는 전력 확충, 첨단 정밀전투력 조기 확보, 북한 특수부대 위협 대비태세 강화, 효율성 극대화, 장군 감축 및 지휘구조 개선 등. 하지만 이 모든 계획의 근간은 수십 년 전의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1980년대 초반 전두환 정부는 후방 지역을 담당하는 ‘특공여단’을 창설했다. 당시 ‘특공여단’ 부대원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적 후방침투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실제 그들의 최우선 임무는 ‘북한 특수부대 침투 시 조기 대응 및 제압’이었다. 때문에 미군과 군사연구기관은 이들을 ‘대침투부대(Counter-Infiltration Unit)’이라고 불렀다.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합동성 강화 또한 전두환 정부에서 시작해 노태우 정부 때 마무리됐던 ‘818계획(장기국방태세발전방향 연구)’에도 언급된 것이다. ‘818계획’에서도 미국과 같은 합동군제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한편 ‘입체기동전’ 개념을 도입해 헬기 전력을 대폭 강화하고 육해공군의 합동작전에 대한 개념을 발전시키자고 한 바 있다.
첨단 정밀전투력 조기 확보는 박정희 정부 때부터 시작된 ‘율곡사업’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다만 이번 ‘307계획’에서 일부 최신무기의 도입 시기를 앞당긴다는 점 정도가 다르다. 도입 시기를 앞당기려는 무기들 또한 지난 네 번의 정부가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면서 이제야 시작되는 사업들이 다수다.
이처럼 국방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국방개혁과제’라는 게 대부분 ‘재탕’에 가까워, 우리가 처한 위협에 특화된 개념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욱 실망스러운 건 외부 전문가들이나 현장 지휘관들이 그동안 끊임없이 지적했던 부분들은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X별들'은 모르는, 현장 지휘관들이 원하는 것
초급·중급 지휘관들이나 특수임무수행자, 정보 관계자, 예비역 등을 만나면 군 개혁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다. 각자 맡았던 임무에 따라 보는 시각도 다르다. 하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들이 있다. 첫째 합동성 강화, 둘째 실전에 필요한 전력 강화, 셋째 정신 전력 강화다.
합동성 강화에 대해 현장 지휘관이나 예비역들은 모군(母軍)에 관계없이 ‘제도나 자리 몇 개 바꾸는 게 아니라, 합참의장과 합참의 권한 강화, 각 군 정원의 균형배치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젊은 장교와 예비역들은 육군 혼자 전쟁을 하는 게 아니라, 해군과 공군, 해병대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걸 잘 안다. 이들은 합참의장의 권한을 강화해 합참에 파견된 인원들이 자신의 임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고, 각 군 참모총장들이 합참을 흔들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전에 필요한 전력 강화 문제도 비슷한 지적이 나온다. 현장 지휘관에게 ‘실전 전력’이란 ‘적을 제대로 보고, 평가하고, 파괴할 수 있는 전력’이다. 다수의 지휘관들은 “실전 전력을 키우려면 우선 실탄을 사용한 교육훈련을 최대한 많이 하고, 타 군과의 합동 실사격 훈련도 해야 하며 전시에 사용할 ‘치장 장비’와 같은 장비도 실제로 사용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번 ‘307계획’ 중에는 ‘교육용 탄환 및 미사일 예산 확대’ 등의 설명은 없었다.
현장 지휘관들은 또한 ‘정보 전력 강화’도 ‘실전에 필요한 전력 강화’ 문제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군 고위급’들은 대북 정보는 물론 주변국의 전력 등에 관한 정보를 98% 이상 미국에 의존해 왔는데 이런 식으로는 실전 능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또한 ‘고위급’들의 다수가 ‘무기만 강하면 북한은 물론 주변국을 이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탓에 정보 전력 및 전문 인력 양성에 인색하다는 지적도 많이 했다. ‘기밀’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발표된 ‘307계획’을 보면 정보 전문 인력 양성, 정보 전력 확충 계획은 미미하다.
세 번째는 정신전력 강화 문제다. 현장 지휘관과 영관급 예비역들은 우리 군이 장비는 주변국에 비해 우수할지 몰라도 ‘내가 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는 장교들이 넘쳐나는 마당에 전쟁이 나면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현실임에도 이번 ‘307계획’의 마지막에는 ‘군이 대민정신교육을 실시할 것’이라고 되어 있다.
이런 몇 가지 문제점을 예비역 초·중급 장교들에게 전해주자 이들은 ‘X별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며 냉소를 지었다. 이들은 “군이 대민교육을 하겠다는 점은 답답한 게 아니라 오히려 웃긴다. 군에서 ‘향군 어르신들’이나 예비역 장성, 영관급들 불러 ‘대민 정신교육’을 한다면 과연 누가 듣겠느냐”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고 비판했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이후 청와대는 이미 활동 중이던 ‘군선진화추진위원회’와 함께 ‘국가안보점검총괄회의’를 신설, 군 개혁 과제를 다시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제시한 과제 모두가 ‘미래지향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다수 포함돼 있어 기대가 컸다. 하지만 이번 ‘307계획’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반드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교집합만 남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래서 ‘개혁’은 당사자의 손에 맡겨서는 안 되는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