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 ⑫ 

      다가선 나는 아카마스의 상반신이 가득 붕대로 감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아카마스가 입술을 달삭이며 말하자 하루코는 귀를 기울이더니 방안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잠깐 방을 나가주세요.」
    일본어였지만 나는 알아들었다.

    방안에 모여 서있던 사람들이 두말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으므로 셋이 남았다. 침대 옆에 선 내가 아카마스를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방안이 조용해지면서 나는 감회에 젖었다.

    아카마스를 이렇게 만든 것은 결국 나였다. 내가 정보를 주었기 때문이다. 나를 보좌관으로 끌어 들이려는 아카마스의 의도에 억눌러져 있던 내 증오심이 폭발했다.

    그 순간 아카마스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고베에서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사이베리아호였던가?
    백제계로 유창한 조선어를 쓰는 아카마스에게 감동을 받았던 때도 있었다.

    그때 아카마스가 입을 열었다.
    「이공, 난 곧 죽소.」
    또렷한 목소리다. 내 눈을 응시하며 아카마스가 말을 잇는다.
    「가슴에 총탄을 세발이나 맞았거든. 수술도 불가능 하다는거요.」
    「아카마스씨.」

    내가 입을 열었더니 아카마스가 머리를 조금 저었다. 그래서 말을 멈춘 나를 향해 아카마스가 웃어보였다.
    「내가 뵙자고 부른 것은 부탁드릴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시지요.」
    「내 딸 하루코를 부탁합니다.」

    놀란 내가 눈을 크게 떴을 때 아카마스의 얼굴도 굳어졌다. 그리고는 가쁜 숨을 고르고 나서 말을 잇는다.
    「하루코는 아카마스 다케오의 외동딸입니다. 따라서 하루코와 결합하면 이공의 입지는 반석처럼 굳어질 것이오.」
    「......」
    「또한 하루코가 이공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애비와는 달리 순수한 감정만을 품고 있지요. 부디 하루코를 맞아 딸만을 남겨두고 떠나는 이 애비의 걱정을 덜어주기 바라오.」
    「아카마스씨.」

    다시 내가 아카마스를 불렀다. 아카마스는 누구한테 저격당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든 것 같다.

    내가 말을 이었다.
    「그런 걱정은 마시고 우선 몸부터...」
    「이공, 약속 해주시겠소?」
    하고 아카마스가 재촉하듯 물었을 때 지금까지 숨도 죽이고 있던 하루코가 나섰다.

    「아버지, 이제 그만요.」
    하루코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져 있다.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되요. 아버지.」

    「이공.」
    아카마스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로 옮겨졌다.
    「이공, 나는 일본국에 충성을 맹세한 사람이고 이제 그 충의를 지키다가 죽습니다.」

    아카마스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떠올랐다. 그러나 눈빛은 약해져 있다.
    「나는 이공과 함께 일본과 조선의 일체된 국가를 창조해보고 싶었소.」
    그리고는 아카마스가 손을 내밀었으므로 나는 손을 잡았다.

    그때 아카마스가 하루코에게 말했다.
    「하루코, 너도 내 손을 잡거라.」
    하루코가 손을 붙이자 셋의 손이 뭉쳐졌다. 아카마스의 손은 뜨거웠다. 하루코의 손은 얼굴처럼 굳어져 있다.

    그때 아카마스가 나에게 물었다.
    「이공, 약속해주시겠소?」
    「약속하지요.」

    내가 한마디씩 차분하게 말했다.
    「하루코를 꼭 보살펴 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