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1 보병전투차 악셀레이터 깊게 밟으면 배수펌프 멈춰다른 국가들 보병전투차에 부양 장치 안달아
  • 최근 K1전차의 포신파열, K21 보병전투차의 침수사건 등 육군 기갑장비의 문제점이 잇달아 공개되고, 급기야 지난 7일 MBC 뉴스가 ‘최신형 보병전투차 K21에 450여 가지 결함이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전력화했다’고 보도하자,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이 8일 브리핑을 자청했다. 방사청은 이날 브리핑에서 “오랜 기간을 거쳐 수많은 평가를 거친 것이기 때문에 결함이 있거나 설계 문제는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결국 설득력 있는 답은 내놓지 못했다.

    방위사업청이 ‘괜찮다’ 말하는 K21

    방사청은 브리핑에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통해 K21을 개발했는지 역설했다. 방사청 장갑차 담당팀장은 “K21은 1992년부터 8년 동안 ‘한국형 보병전투차’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개념 설계회의를 거쳐 1999년부터 초도개발을 시작한 것”이라며 “MBC의 보도와 같이 450여 가지의 결함을 그냥 무시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해당 언론이 보도한 450여 가지 결함이라는 것은 군의 요구를 반영하는 ‘단순보완사항’이라는 것으로 이는 예를 들면 사각형 볼트와 너트를 육각형으로 해달라는 것이나 볼트 머리 부분을 일자 드라이버에 맞게 해달라는 식의 사소한 것”이라며, “이런 것을 모두 고치지 않았다고 해서 ‘심각한 결함이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전력화했다’고 말하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방사청 관계자들은 또한 K21 뿐만 아니라 군이 장비를 획득할 때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사용자 입장에서 철저히 효율성을 고려한, 군 요구 성능(ROC)이 제시되면, 시제품을 만들어 시험평가를 실시한다. 여기서 적합 또는 부적합 판정을 내리게 되는데 적합하다는 건 기계적 결함이 없으며 군 요구 성능을 모두 충족했다는 걸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문제없다”던 방사청, 기자들 추궁에 “우리도 예상 못한 문제”로 태도 바꿔

    하지만 이 같은 방사청 관계자들의 브리핑 이후에도 의문은 남았다. 2009년 11월에 이어 지난 7월 29일 발생한 K21 보병전투차의 침수 사고 원인은 하천을 건널 시 차량의 공기흡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물을 제대로 퍼내지 못해 생긴 사고였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즉 도하 작전 시 차량의 액셀러레이터를 살살 밟으면 배수펌프가 작동해 침수 우려가 없지만 액셀레이터를 세게 밟을 경우에는 배수펌프의 작동이 멈추면서 유입된 물이 점차 늘어나 침수됐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방사청 관계자들은 이것이 설계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다.

    또한 도하 작전 시 적의 공격에 노출될 우려가 있는 부분에 ‘부양장치’라며 격벽구조의 튜브를 장착한 점에 대해서도 ‘총탄 정도에는 절대 가라앉지 않는다’고 장담했다. 방사청 관계자는 이와 함께 “중량 20톤 이상의 보병 전투차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 것만이 수상 부양이 가능하다”며 자랑했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왜 보병전투차는 반드시 물에 떠야만 할까. K21 보병전투차를 만들 때 참고했던 미 육군의 M2 브래들리 보병전투차도 초기에는 ‘부양장치’를 통해 공병의 도움 없이도 도하 작전이 가능하도록 만들고자 했으나 중량과 기술의 문제로 벽에 부딪혔고, 결국 인명사고가 발생하면서 부양장치를 포기했다.

    영국의 워리어나 스웨덴의 CV90, 독일의 푸마, 일본의 89식 보병전투차 등에는 부양장치가 없다. 이들은 공병의 도움을 얻어 도하작전을 실시한다. 이들도 미 육군의 M2 브래들리처럼 승무원의 안전을 확보하고, 화력과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중량을 대폭 늘리는 대신 자체적인 도하 작전능력을 포기했다.

    반면 동구권의 대표적인 보병 전투차량인 BMP 시리즈는 20톤 미만의 가벼운 무게를 장점으로 살려 차체가 물에 뜰 수 있도록 설계했으며, 워터제트를 달아 물속에서도 항행이 가능토록 만들었다. 하지만 BMP 시리즈는 일반 보병부대의 공용화기에도 제대로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장갑이 얇다는 게 약점이다. 따라서 BMP 시리즈는 전투 시 도하 작전 중 공격을 받으면 침수될 가능성이 높으며 승무원의 인명피해도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최신 보병전투차 K21은 그 중간이다. 화력과 장갑을 강화함과 동시에 자체적인 도하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진 못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방사청 관계자에게 ‘처음 설계 개념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보병 전투차들 중 상당수는 부양 능력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점, 수상 항행 시 액셀레이터와 배수펌프 간의 간섭현상, 원 설계 상 배수를 위한 물탱크가 470리터에서 나중에 160리터짜리로 바뀐 점 등 기자들이 집중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질문하자 결국 방사청 관계자들은 “K21에는 별 다른 결함이 없다”고 주장하다, “그런 결함이 생길 것이라고는 솔직히 우리도 예상하지 못했다”며 슬며시 태도를 바꿨다.

    예산 문제인가 군의 ‘정신’ 문제인가

    방사청 측은 이런 다양한 문제가 생긴 원인, 부양장치를 고집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우리 군의 한정된 자원’, 즉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서방국가들처럼 보병 전투차는 전투력과 방어력을 높이고, 대신 공병대를 확충해 도하 작전을 지원하는 식으로 하기는 어렵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사청의 주장은 전력개발계획을 따져보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한 기갑장비 연구가는 “과거에는 우리나라의 경제력도 약하고 인건비나 제조비용이 낮은데다 국가예산규모도 한정돼 있어 그런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지만 지금도 그런 논리가 맞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국방비 중 방사청이 집행하는 방위력 개선비는 2009년 기준으로 8조4854억 원(국방비의 29.6%)에 달한다.

    최신 장비의 가격도 이런 지적을 뒷받침한다. 현재 군이 방산업체와 개발 중인 ‘최신 전차’ 흑표의 경우 대당 생산가격이 78억 원 가량이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전차’라 불리는 일본의 ‘90식’ 전차의 대당 가격 약 8억 엔(한화 약 102억 원)보다는 싸지만, 미군의 주력전차인 에이브럼스 M1A2 전차의 납품가 435만 달러에 비해서는 거의 1.8배에 달한다. 육군은 이런 ‘흑표’ 전차를 2011년부터 실전 배치할 예정이다. 그런데도 방사청은 ‘돈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한국형 다목적 헬기 사업이나 차세대 전투기 개발사업, 차세대 소총사업 등을 위한 예산도 적지 않다. 차세대 대공 미사일 도입사업 등도 마찬가지다. 반면 2015년 12월 이후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 이후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정보 및 감시자산, 공중급유기, 지원함 도입, 개인 안전 장구류 확보를 위해 소요 제기된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지적들과 지금까지 일어난 일련의 사고들을 종합해보면 방사청 관계자들의 ‘돈이 모자라서’라는 대답보다는 ‘우리가 돈을 제대로 못 써서’ 그리고 ‘우리 돈 쓰고도 제조업체나 장비 개발진들에게 책임을 묻지 못해서,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 그런 장비가 나온 것’이라는 대답이 오히려 더 솔직해 보인다.

    실제 8일 브리핑 중 한 기자가 “2009년 11월 K21 침수사고 이후 감사를 했는지, 감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누가 어떤 식으로 책임을 졌는지, 그런 결과가 나왔음에도 이번에 또 사고가 생긴 이유는 무엇인지 알려 달라”고 물었다. 하지만 브리핑에 참석한 국방부, 방사청 관계자 중 누구도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이 장면이 최근 드러나는 ‘최신장비’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