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된 무기중 K1 전차 빼곤 모두 "최고 최강" 자랑방사청, 국방부, 각 군, 방위산업 구조적 문제에 쉬쉬'자주국방'=무기국산화 + 국방의지...총체적 개혁 시급
  • 지난 8월 6일 보병 26사단 전차대대 소속 K1 전차가 사격훈련 중 포신이 파열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실은 한 달 여가 지난 9월 5일에서야 언론에 보도됐다. 6일 이와 유사한 사고가 지난 20여 년 동안 9차례 일어났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국방부를 향한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다.

    그런데 이렇게 공개되지 않는 군의 사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신형 장갑차 K21이 훈련 중 침수돼 부사관 1명이 사망한 사고가 보도되는 과정에서 작년 11월에도 유사한 침수사고가 있었던 것이 드러났고, 2007년 5월경에는 훈련 중이던 한국형 구축함 문무대왕함의 포신이 파열되는 사고가 한 달 여 뒤에 공개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게다가 지난 5~6월 보급된 전투화 밑창이 떨어져 나가 물이 새는, 일명 ‘불량 전투화’가 대량으로 발견되면서 군 장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는 중이다. 연간 30조 원이 넘는 국방비를 사용하고, 그 중 18조 원에 달하는 비용이 방위사업청을 통해 사용됨에도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

    불량 사고가 난 무기의 공통점

    최근 불량 사고가 난 무기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신형’이라는 점. 침수 사고로 부사관의 목숨을 앗아간 K21은 ‘헬기도 잡는 장갑차’라는 별명을 얻으며 유명해진 최신 보병전투차량이다. 미군의 M2 브래들리를 따라잡겠다며 만든 보병전투차로, 기존의 K200 장갑차가 보병 부대의 기관총에도 뚫릴 만큼 장갑이 얇고 무장도 빈약했던 점을 보완, 화력과 방어력을 크게 높인 것이었다.

    신형 전투화는 8년의 개발 기간을 거쳐 만든 것으로 무겁고 불편하던 기존의 전투화를 최근 유행하는 경등산화 수준으로 가볍고 튼튼하게 만든다는 목표 아래 개발된 것이다. 등산화로 유명한 트렉스타가 개발과정에서부터 참여했으며, 전투화 생산에 참고하는 족형(足形)도 한국인의 체형을 참고했다고 해 화제가 됐었다. 하지만 2009년 10월부터 납품을 시작한 뒤 불과 반 년 사이에 대량의 불량품이 발견됐다.

    2007년 5월 훈련 중 포신이 폭발한 문무대왕함은 한국형 구축함(KD-Ⅱ)으로 배수량 4,500톤급의 최신 구축함이다. 우리 해군은 과거 미군으로부터 양도받은 기어링급 구축함의 퇴역 후 신형 전투함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그 결과 KD-Ⅰ, KD-Ⅱ, KD-Ⅲ와 같은, 세계 어느 해군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수준의 전투함을 장비하게 됐다. KD-Ⅱ는 그 중에서도 우리 해군 함대의 주력 함정이라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당시 폭발사고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지난 8월 하순에는 차세대 주력전차인 K2 흑표 전차의 변속기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게 드러났다. 당시 방사청에서 나온 자료에 따르면 K2 전차는 2010년 초부터 지금까지 시험 기동 중 클러치 손상으로 인한 이상이 3번, 자동변속기 전자제어장치인 TCU 이상이 10번, 오일 분배기 이상으로 인한 누유가 11번, 용접불량으로 인한 오일 냉각기 균열 발견이 3번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K2 흑표 전차 또한 ‘헬기 잡는 전차’라는 별명을 얻으며 군과 방사청, 제조업체가 대대적으로 선전하던 최신형 무기다.

    2009년 12월 3일에는 방산업체의 의뢰를 받아 국방과학기술연구소(ADD)가 진행하던 신형 포탄 발사시험 중 폭발사고가 발생, ADD 연구원 정기창 씨가 숨지고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당시 시험하던 포탄은 사거리 연장탄(RAP)으로 신관과 포탄 조립 불량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그나마 이번에 포신이 파열된 K1 전차가 상대적으로는 구식 무기다. 공식적으로 1989년부터 실전 배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기의 특성 상 한 번 채용되면 수십 년을 사용한다는 점으로 볼 때 UH-1H나 500MD 헬기, F-5 전투기 수준의 구형은 아니지만 20년 이상 사용해 왔고 그 개량형과 후속 모델이 곧 나온다는 점에서 분명 구형 무기로 볼 수 있다.

    최고, 최강만을 고집하는 한국군?

    이처럼 사고가 난 신형 무기들이 처음 알려질 때의 언론 보도를 모아 보면 재미난 점을 볼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이 ‘최강’ ‘최고’ 등과 같은 수식어로 포장돼 있다는 점이다.

    한국군의 신형 장비는 설계 단계에서 보통 미국이나 유럽의 장비를 참고해 만든다. 이번에 사고가 난 K1 전차도 처음 설계와 개발은 美제네럴 다이나믹스에서 맡았다. 당시 최신예 전차인 에이브람스 M1 전차를 개발한 곳이었기 때문에 의뢰했다. 따라서 처음 K1 전차가 ‘88전차’로 소개될 당시 K1 전차를 M1 전차의 축소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보병전투차도 현재 육군의 주력인 K200은 미군의 M113을 바탕으로 했고, 향후 배치될 신형 K21 또한 미군의 M113과 M2 브래들리 등을 많이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군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조선 기술이 뛰어난 탓에 배의 외형 등은 우리 기술로 제조할 수 있으나 방어 체계, 화력통제시스템, 통신지휘체계, 무기 등은 대부분 외제를 도입해 채운다(대표적 사례가 이지스 구축함으로 알려진 KD-Ⅲ 구축함이다). 공군의 경우에는 일명 ‘제공호’로 불린 F-5F를 제외하고는 기체부터 무장까지 직도입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미국 또는 유럽산 무기에서 개념을 빌려오거나 직도입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째는 한국군이 실전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군에는 교전 경험이 있는 장병의 숫자가 ○명 이내라고 한다. 그들 또한 무기의 개념설계나 도입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어떤 무기가 한반도를 전장으로 할 때 실전에서 유용한지에 대한 평가 기준(ROC)을 제대로 만들기 어렵다.

    두 번째는 우리 군이 무기를 도입할 때는 6.25 전쟁 당시 화력 열세의 악몽 탓인지 ‘강력한 화력’과 ‘빠른 기동력’ ‘뚫리지 않는 방어력’을 모두 갖춰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기의 특성상 강력한 화력을 강조하면 기동력이나 방어력을 희생해야 하고, 기동력을 강조하면 화력이나 방어력을 희생해야 할 경우가 많다. 이를 모두 갖추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군은 항상 제조업체에 ‘최고 최강의 무기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다. 여기에 방위산업체가 군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며 장단을 맞추게 되면 ‘입으로는 세계 최강’인 무기를 만들어낼 우려가 있다.

    비상식적인 국산화 집착

    다른 문제도 있다. 바로 ‘국산화’에 대한 군의 집착이다. 故박정희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계획을 계기로 내세운 ‘자주국방’이라는 구호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 ‘자주국방’이 총체적인 국방력 강화가 아닌, ‘전투장비의 자주국방화’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형 장비가 개발되거나 도입될 때마다 언론 보도에는 ‘순수 국산기술로 제조’ ‘국산기술로 제조했음에도 세계 최고 수준’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하지만 이 ‘국산화 비율’이라는 것이 핵심 부품 및 기술의 국산화가 아니라 부품 개수 대비 몇 %의 국산화라는 식으로 계량화된 비율이라는 걸 보도하는 언론은 드물다.

    여기다 현재 우리나라의 방산 기술로는 항공무기 전반, 장거리 탐지 및 감시체계, 지상무기의 동력체계 등 일부 분야에서는 세계 최강국의 기술을 따라 잡기 힘든 게 현실임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국산화’한다는 명목으로 오랜 기간 동안 상당한 예산을 쏟아 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시원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국방기술을 개발하는 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못한 우리 방위산업분야 전반의 문제임에도 군은 끝까지 ‘국산화’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30년이 넘게 운용되고 있는 헬기, 40년 이상 운용되고 있는 대공 미사일이 현역에 배치돼 있어도 장비를 직접 운용하는 군은 아무런 문제제기를 못하고 있고, 방위산업을 담당하는 기술개발인력들은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려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신형 장비=불량 장비’ 공식 해결하려면

    이 외에도 방위산업계의 잘못된 관행, 방위사업청과 각 군 간의 소통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생긴 문제가 터진 게 최근의 신형 장비 사고들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먼 데서 찾을 필요가 없다. ‘천안함 사태’ 이후 다양한 진단과 안보점검총괄회의, 군 선진화추진위원회의 제안 등을 통해 이미 나와 있다.

    우선 각 군은 ‘갖고 싶은 무기’와 ‘필요한 무기’의 차이를 이해하고, ‘필요한 무기’부터 소요제기를 해야 한다. 이때 제병합동작전에서의 효율성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 현대전은 백병전이나 참호전이 아닌, 입체전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군은 ‘자주국방’이라는 말이 ‘전투장비의 국산화’와 다른 의미임을 이해해야 한다. 국방력 강화를 위해서 필요한 건 강력한 전투장비 뿐만 아니라 장비를 잘 다룰 수 있는 숙련된 인력, 각 군 간의 유기적 협력과 소통, 그리고 조직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정신적 무장도 필수다. 전투 장비와 화력의 강도는 그 다음의 선택 사항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소요를 제기하는 장비의 국산화를 고집할 이유가 줄어든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점은 국방전력 강화를 ‘힘의 총량 높이기’가 아닌, ‘국가 비전’을 바탕으로 ‘전략적 목표’에 맞춰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제병 합동성 강화를 생각하면 각 군도 방위산업체들에 무의미한 수준의 군 요구 성능(ROC)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다.

    불과 700만 명의 인구로 1억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주변의 적성국들에 맞서는 이스라엘은 대부분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무기기술 또한 뛰어나 자체 제작한 전투기도 있고 최고의 전차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 ‘당신들을 강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국민들 간의 끈끈한 유대감과 의지’라고 대답한다. 우리 군이 지금 배워야 할 게 이 답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