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필리핀 버스 피랍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CNN. 23일 오후 10시경 버스 안으로 진입하려는 현지 경찰특공대의 모습이 진압 당시의 긴박했던 순간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 뉴데일리
    ▲ 필리핀 버스 피랍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CNN. 23일 오후 10시경 버스 안으로 진입하려는 현지 경찰특공대의 모습이 진압 당시의 긴박했던 순간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 뉴데일리

    한국시간으로 23일 M16 소총으로 무장한 전직 경찰관에 의해 관광버스가 피랍되는 사태가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벌어진 가운데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일부 언론의 성급한 보도로 인해 '오보'가 난무하고 있다.

    당초 외신과 일부 국내 언론은 "이날 오전 필리핀에서 한 무장 괴한에 관광버스가 피랍, 탑승한 승객 25명이 인질로 잡히는 사건이 발생했다"며 "이들 대부분은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긴급타전했다.

    그러나 잠시후 AP통신은 필리핀 현지 경찰의 중간수사 발표를 인용, "롤란도 멘도자(Rolando Mendoza)라는 이름의 전직 경찰관이 납치한 버스에는 25명의 관광객이 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이들 대부분은 한국인이 아닌, 홍콩인들"이라고 밝혔다.

    AP통신은 "마닐라 경찰이 버스가 괴한에 피랍된 직후 '승객 대부분이 한국인'이라고 밝혔지만 잠시 후 홍콩인으로 정정, 현지 언론과 라디오 등을 통해 발표했다"고 전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 역시 필리핀 전직 경찰관에 의해 자행된 피랍사건에 한국인 관광객이 연루됐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마닐라 경찰관에 사실 확인을 요청한 결과 한국인 인질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인질들의 국적에 대해 다소 혼선이 초래됐었으나 현지 대사관에서 급파한 영사가 경찰을 통해 확인, 인질들의 국적이 모두 홍콩인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또한 "당초 25명이었던 인질은 6명이 풀려나 현재 19명이 버스에 탑승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마닐라 경찰의 정정 발표와 통신사 등의 추가 보도로 '한국인 피랍설'은 해프닝에 그쳤지만 이날 오전 국내 언론의 섣부른 보도를 접한 국내 네티즌들은 깜짝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려야만 했다. 특히 같은 시각 필리핀에 관광차 머물러 있던 이들의 가족과 지인들은 관련 소식을 전한 일부 언론에 항의 전화를 하기도 했다.

    절친한 동료가 현재 필리핀에서 어학 연수 중이라는 대학생 정모(27·수유동)씨는 "오전 필리핀에서 한국인들이 인질로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면서 "다행히 한국인이 아니라 홍콩인이 인질로 잡혔다는 후속 보도를 접하고 안심하긴 했지만 한 마디로 언론사에 낚였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나빴다"고 밝혔다.

  • ▲ AP통신의 관련 보도 캡처.  ⓒ 뉴데일리
    ▲ AP통신의 관련 보도 캡처.  ⓒ 뉴데일리

    그러나 오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전직 경찰관이 인질극을 벌이던 버스안에서 인질 15명 모두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 것.

    이같은 내역을 밝힌 언론은 일본의 교도통신으로, 경찰이 버스에 접근하기 직전 창문을 통해 탈출한 운전사의 주장을 인용, "멘도자가 버스 내 인질 15명을 죽인 뒤 자신 역시 총으로 자살했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인질들의 사망 여부와 관련 "필리핀 당국의 공식적인 확인은 없었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승객 전원이 사망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 보도를 했다.

    이에 국내 언론 역시 "필리핀 피랍버스 인질 15명 전원 사망한듯" 같은 자극적인 제하의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인질과 범인 전원이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뉴스는 오보로 판명됐다.

    AP통신은 "필리핀 경찰이 15명의 관광객 인질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총격 소리가 들린 이후 버스 안에 진입했는데 최소한 네 명 이상의 승객들이 기어서 버스 뒷문으로 빠져나갔다"고 밝혔다.

    당시 필리핀 경찰의 구조작전을 생중계하던 미국 CNN 방송도 Breaking News(브레이킹 뉴스)를 통해 "오후 8시 30분경 버스 안에서 총성이 들린 이후 경찰이 버스 진입을 시도했는데 멘도자가 인질 2명을 총으로 쏜 뒤 '더 이상 가까이 접근하면 나머지 인질들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중계 화면에서도 현지 경찰이 총으로 버스 타이어를 쏴 '차량이동'을 원천봉쇄한 뒤 해머로 출입문 유리를 깨뜨리며 버스 안으로의 진입을 재차 시도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당초 "승객과 범인 모두가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주장을 편 버스 운전사는 이 혼란을 틈타 버스 밖으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범인의 사망을 확인한 경찰은 오후 10시경 버스 안으로 들어가 생존자들을 구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진입을 시도하기 직전 버스 안에는 15명이 억류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범인이 난사한 총격을 받아 2명이 숨졌고 밖으로 기어나온 4명을 포함, 8명 정도가 생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나머지 5명의 생사여부에 대해선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날 오전 인질극이 벌어질 당시 해당 관광버스에는 필리핀 현지인과 홍콩인 관광객 등 25명이 탑승해 있었는데 멘도자는 이 중 아이 3명, 여성 2명, 당뇨병 환자 1명, 필리핀인 3명 등 총 9명을 석방시켰다. 이후 경찰이 1차 진입작전을 시도하기 직전 버스 기사가 극적으로 탈출하며 피랍된 버스에는 15명의 승객이 억류돼 있었다.

    사망한 납치범 롤란도 멘도자는 마약범죄, 뇌물수수 등의 비리 혐의가 적발돼 2008년 파면됐다. 이날 자신의 해고에 앙심을 품고 복직 등을 요구하며 끔찍한 무력시위를 벌인 멘도사는 '복직' 대신 차가운 감옥에서 남은 생을 보낼 운명에 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