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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가야돼.」
    하고 이동규가 욕실에서 나오면서 말했으므로 박재희는 머리를 들었다.

     

    밤 11시 반, 방금 섹스를 마친 방 안에는 후덥지근한 열기가 덮여져 있다. 방안의 불은 끈 채 TV만 켜놓아서 이동규의 알몸에 화면의 컬러 영상이 어른거린다.

     

    「시골 할아버지가 오셨거든.」
    팬티를 입으면서 이동규가 말을 잇는다.
    「깜박 잊어먹었어. 미안해.」

     

    오늘 자고 갈줄 알았기 때문에 박재희는 집에다 친구 집에서 잔다고 말해놓은 상태.
    그러나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박재희가 욕실로 다가가며 말했다.

     

    「알았어. 나 씻고 갈테니까 너 먼저 가.」
    「괜찮겠어?」
    했지만 이동규의 얼굴은 생기가 떠있다.

     

    일 마치고 모텔에서 같이 나가기가 굉장히 어색하고 쪽팔린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내가 김민성이다.

     

    「에이, 나 쫌 있다 갈래.」
    이쪽이 먼저 가라고 했기 때문인지 이동규가 주춤거렸다.

     

    잠자코 욕실 안으로 들어선 박재희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알몸을 보고는 문득 이를 악물었다.
    「개같은 년.」
    거울을 향해 말한 박재희가 이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네가 개같은 년이라 그래.」

     

    윤지선한테서 김민성과 그렇고 그렇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태연한 척 했지만 집에 돌아와 방에서 펑펑 울었다. 그러나 다음에 윤지선을 다시 만났을때는 시치미를 뚝 떼고 이동규를 사귀기로 했다고 말해주었다. 그것은 김민성한테 가서 말하라고 한 것이나 같다.

     

    샤워기 밑에서 물을 맞으며 박재희는 자신이 김민성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도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어떻게 만나는 오빠가 있는데도 딴 남자하고 모텔 출입을 한단 말인가?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지만 그렇게까지 납득이 된다면 그야말로 「개세상」이다.
    인간이라면 「절제」「자제」가 필요하다. 「약속」「신의」「순정」까지는 주장 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배신」까지 닿으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나는 「배신」을 했다.

     

    이동규가 하도 졸랐다는 핑계를 대었어도 그 당시에 성적 충동에 휩쓸렸다. 하고나서 엄청난 후회에 시달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거기에다 모텔에서 나오는 그 장면이 김민성에게 발각 될 줄이야.

     

    「영전」모텔은 김민성하고 단골로 다녔던 둘만의 추억이 쌓인 곳이었다. 그곳이 익숙했기 때문에 이동규를 끌고 간 것이 치명타가 되었다. 김민성이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영전」에 터를 잡은 「창녀」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대충 샤워를 마친 박재희가 욕실을 나왔을 때 이동규는 가지않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나 옷은 다 차려입고 의자에 엉덩이를 반만 걸치고는 담배를 피우는 중이다.

    「빨랑 가.」
    알몸을 타월로 가린 박재희가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전등 스위치를 켰다. 지금까지는 한번도 불을 켜놓고 옷을 벗어본 적이 없는 박재희였다.

     

    박재희가 놀란 듯 눈만 껌벅이는 이동규에게 말했다.

    「글고 우리 오늘 이시간부터 끝내. 다시는 보지 말자구.」
    「야, 재희야.」
    허둥거리면서 이동규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면서 일어섰다.

     

    그때 박재희가 방문을 열면서 말했다.
    「어서 나가. 얼른.」

    「야.」했지만 이동규가 마침내 발을 떼었다.

     

    지금 가만두면 이놈은 마음이 변해서 오늘 밤 집에 안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