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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는 16일 북한의 보건의료 체계가 붕괴하고 있다는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의 최근 보고서가 과학적 근거가 없고 현 상황에 맞지 않는 주장이라며 비판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15일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한 `북한 건강권 보고서, 와해 상태의 북한 보건의료'를 통해 북한에서는 마취 없이 맹장이나 다리 절단 등 외과수술이 이뤄지고, 소독되지 않은 피하주사 바늘을 사용하며 병상의 침대 시트도 정기적으로 세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앰네스티는 탈북 주민 40여 명과 이들을 치료한 국내 의료 전문가들에 대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된 보고서를 통해 원칙적으로 북한에서 의료서비스는 무료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진료와 수술을 받기 위해 의사에게 담배, 술, 식량, 현금 등 대가를 줘야 한다는 증언도 전했다.
또 병원을 가기 위해서는 2시간을 걸어가야 하는 곳도 있는 등 의료 접근성이 열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WHO의 폴 가우드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앰네스티 보고서를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이 보고서가 2001년 쯤의 상황으로 소급되는 `옛날 얘기'라고 지적했다.
가우드 대변인은 앰네스티 보고서가 대부분 탈북자들의 증언에 근거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보고서에 있는) 모든 사실들은 현재 북한에 살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나온 것"이라며 "(앰네스티의) 연구는 과학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WHO가 앰네스티 보고서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보고서의 내용이 지난 4월 말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마거릿 찬 WHO 사무총장의 평가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찬 사무총장은 지난 4월26일부터 29일까지 북한 내 의료시설 등을 둘러본 뒤 제네바로 복귀, 같은 달 30일 유엔 출입기자단과의 전화회견을 통해 "북한의 의료상황이 크게 개선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긍정 평가했다.
WHO 수장 자격으로 9년 만에 방북한 찬 사무총장은 북한 주민의 백신 접종률 증가와 병원 내 감염률 하락 등을 예로 들면서 "북한의 의료상황이 2001년 이후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개선됐다"며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북한에 대해 부러워하는(envy) 것은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력이 많다는 점"이라고 말한 바 있다.
WHO의 비판에 대해 샘 자리피 국제앰네스티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은 AP에 "북한에서 활동하는 데 많은 제약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는 검증 가능한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WHO의 언급을 앰네스티 보고서에 대한 비판이나 거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자리피 국장은 북한 정부가 문호를 개방해 보건의료 체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면 모든 논쟁이 종결될 것이라며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지표들은 북한의 보건의료 상황이 비참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동일 사안을 놓고 권위 있는 유엔기구와 국제 인권단체의 `극과 극'에 가까운 평가를 내놓고 갈등하는 양상마저 보이자 관계자들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네바 주재 한 외교관은 "북한이 폐쇄적인 국가여서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며 "보건 관련 통계자료마저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누가 더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WHO 관계자는 "북한에 사무소를 갖고 있는 WHO가 좀 더 낫다고 할 수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 검증할 길은 없다"며 "다만 다른 개도국들이 북한을 부러워한다는 마거릿 찬 사무총장의 발언은 과도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