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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이야.」
호텔 로비의 기둥에 등을 붙이고 선 하주연이 프론트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오후 5시 20분, 프론트에는 사내 하나가 체크인을 하는 중이다.
사내 뒤쪽에 연초록색 소매없는 원피스 차람의 여자가 서 있었는데 몸매가 잘 빠진 미인이다.하주연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잇는다.
「저 기집애 이름은 양선하. LA에서 이름도 없는 대학에 다니고 있는데 쟤 아빠가 엄청 돈이 많아.」
「너네보다 많아?」놀란 나머지 바보같은 표정을 짓고 김민성이 물었더니 하주연이 발로 정강이를 찼다.
김민성이 눈썹을 찌푸렸고 하주연의 슬리퍼가 벗겨졌다.하주연이 말을 잇는다.
「저자식이 넉달쯤 전부터 이상했어. 술마시다가 잠깐 나갔다 오고 침대에 누워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화장실에 갔어. 약속도 자주 어기고. 알고 봤더니 저 기집애가 끼어들었던 것이라구.」
「에이, 지저분.」김민성이 입맛을 다셨을 때 사내와 여자가 나란히 엘리베이터를 향해 다가왔다. 하주연은 기둥 뒤로 몸을 숨겼지만 김민성은 정면으로 서서 둘을 보았다.
남자는 잘 생겼다. 흰 피부, 섬세한 용모, 큰 키, 귀공자 타입.
여자 또한 하늘거리는 몸매와 웃음 띤 얼굴이 매혹적이다.둘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을 때 하주연이 말했다.
「형이 내 남자가 돼줘. 그래서 저놈하고 서로 치고 받는거야.」
「그렇다면,」
정색한 김민성이 하주연을 보았다.「섹스 파트너가 되어야 맞겠는데 걍 어젯밤 네 방으로 갈걸 그랬지?」
「기다리고 있었다구.」
「지선이가 그렇게 말 했지만 믿기지 않더라. 이유가 없었거든. 그래서 함정 같았지.」
「병신.」
「내가 좀 신중한 성격이거든.」
「저것들이 곧 저녁밥 먹으러 나올테니 우리 작전을 짜자.」
하면서 하주연이 김민성의 팔을 끌고 로비를 나왔다.지금 윤지선은 방에서 TV를 보고 있을 것이었다.
호텔 현관 앞에 선 김민성이 문득 생각이 든 것 같은 얼굴로 하주연에게 묻는다.「너, 저놈한테 미련 있니?」
「분해서 그래.」
「그건 바탕에 미련이 있는거 아냐?」
「상관없어.」하주연이 머리까지 젓더니 쓴웃음을 짓는다.
「난 그렇게 생각이 깊은 성격이 아니라서 이러는가봐.」
「뭐, 이해하고 공감한다. 다만,」
「다만, 뭐?」
「좀 쪽이 팔리기 시작해서 말야.」이번에는 하주연이 눈만 깜박였으므로 김민성이 말을 잇는다.
「저자식이 우리 쇼를 눈치 채면 대쪽 아닐까? 내가 어젯밤 널 따먹지 못한 것도 있고 해서 말야.」
「지랄.」
「걍 우리끼리 놀다가 저놈이 우연히 우리를 발견하도록 하는게 어떠냐? 이 근처 노는데야 뻔하니까 말야.」
「어긋날 수 있어.」
「시발, 인턴이 그렇게 좋은 자리인줄 이제 알겠구만.」김민성이 투덜거렸지만 하주연은 가만있었다.
이윽고 김민성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말했다.
「넌 방에 들어가 있어. 내가 여기 있다가 그놈시키 나오면 따라갔다가 연락할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