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스 4대로 관광버스 사업을 하는 김민성의 아버지 김홍기는 다혈질이다.
    인건비를 아끼려고 김홍기는 직접 버스를 몰면서 안내원 역할까지 했는데 오늘은 일찍 집에 돌아와 있다.
    「어, 너 내일 동해안 간다고?」
    오후 7시경,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로 마신 소주에 얼굴이 불콰해진 김홍기가 들어서는 김민성에게 묻는다.
    「니 차 몰고 갈거냐?」
    「아니, 친구 차.」
    간단하게 말한 김민성이 제 방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김홍기가 불러 세웠다.

    「얌마, 일루와 앉어.」
    「왜?」
    했지만 가방을 소파위에 던진 김민성이 김홍기를 마주보고 앉는다.
    집 안에는 주방에서 뭘 씻고있는 어머니까지 셋뿐이다.

    48평형 아파트 안은 잠깐 조용해졌다. 작년 초에 시집간 누나하고 네식구가 이집에서 15년째 살았다.김홍기가 흐려진 눈으로 김민성을 보았다.

    「돈은 있냐?」
    「알바해서 모은 돈 있어.」
    「며칠간 갔다 올거여?」
    「한 일주일.」
    「너, 어디루 취직 할거여?」
    「봐서.」
    그리고는 말이 딱 막혔다. 대개 이 레벨에서 대화가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버지가 한발 더 나갔다.

    「내 생각으로는 대기업보단 중소기업이 낫다. 거그가 쫌 험하긴 혀도 배울것이 더 많고 출세도 빠른거여. 내 친구 아들놈은...」
    「알았어.」
    말이 길어질 것 같았으므로 김민성이 정색하고 자른다. 아버지 친구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다.

    그 때 어머니 정윤자가 주방에서 불렀다.
    「야, 옷 갈아입고 밥 먹어라.」
    밥상은 다 차리지도 않았는데 아버지 잔소리에서 떼어 놓으려는 것이다.
    김민성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김홍기가 말했다.

    「요즘 젊은 놈들은 3D업종은 피헌다고 허는디, 며칠 굶어봐야 혀. 그려야 정신들이 날거라고.」

    힐끗 김홍기에서 시선을 준 김민성이 제 방으로 들어가 옷을 벗는다.
    그 때 핸드폰의 벨이 울렸으므로 김민성이 먼저 발신자 번호부터 보았다. 박재희다.
    이맛살을 찌푸린 김민성이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왜?」
    그러나 박재희는 대답하지 않는다.
    박재희와는 반년 쯤 사귀었다가 한달 쯤 전에 헤어졌다. 그것은 박재희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목격했기 때문인데 생각 할 때마다 쓴웃음이 나왔다.
    학교 근처의 모텔에서 낮거리를 하고 나오는 박재희와 파트너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모텔이 김민성과 박재희도 자주 들르던 곳이었다.
    김민성은 둘이 모텔 안에서 한 짓보다 박재희의 부주의함에 더 질렸다.
    근처에 다른 모텔도 많았기 때문이다.

    김민성도 가만 있었더니 이윽고 박재희가 말했다.
    「우리, 좀 만나.」
    「조까.」
    짧게 대답한 김민성이 제 말이 우스운지 킁킁 웃었다.
    그리고는 말을 잇는다.
    「야 넌 존심도 없냐? 전화 그만좀 해라. 진짜 짜증난다.」
    「그쪽 정리했어.」
    「이게 증말 춘향전 읊고있네.」
    핸드폰을 고쳐 쥔 김민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야. 나보다 좆 큰 놈 얼마든지 있어. 정신 차리고 홍대 근처로 가봐.」
    그리고는 핸드폰을 침대 위로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