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을 비롯한 북한 전역이 북한 축구가 포르투갈에 7대0으로 패한 충격 속에 잠겨 있다고 전해진다.
    탈북자인 강철환 동북아시아연구소 연구위원은 “평생을 거짓 선전 속에 살아온 북한 주민들은 TV 생중계로 전해지는 '진짜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며 “4대0이 넘어서자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말을 잇지 못했다는 것이 충격을 잘 보여준다”고 밝혔다.

    강 위원은 “극단적 수비형인 북한 축구는 균형이 무너지면 자칫 대패(大敗)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며 “주민들의 눈과 귀를 철저히 틀어막고 있는 북한 지도부가 TV 생중계를 결정했다는 것은 그런 위험성을 잘 몰랐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 위원은 김정일이 '축구광'이라고 소개하며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의 기적을 만든 북한 축구는 1967년 1월 김일성이 갑산파(함경도 파)를 숙청하면서 몰락했다고 소개했다. 축구를 관장했던 갑산파 인맥이 제거되자 그 불똥이 축구계에 떨어졌다는 것.
    당시 월드컵 영웅들의 출신 성분은 모두 지주계급이나 상공인 계층으로 월드컵 팀은 해산됐고 박두익을 제외한 대다수 선수가 수용소로, 지방으로 쫓겨났다고 전했다.

    강 위원은 “훗날 김정일이 축구를 다시 살리기로 결심하고 월드컵 영웅들을 불러들이고, 4·25팀을 창설했다”며 “하지만 월드컵 본선 진출이 계속 좌절되자 한(恨)을 품게 됐다”고 밝혔다. 김정일은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진출하면 축구팀에 벤츠 승용차와 각각 1만 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북한은 예선에서 한국에 3대0으로 패하고 탈락했다.
    김정일은 이때 "축구가 망신스러우니 10년간 밖에 나가지 말고 실력을 키우라"고 지시했다고 강 위원은 소개했다. 이 때문에 실력 향상기에 있었던 북한 축구는 6년간 해외경기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권력 2인자인 장성택도 축구광이어서 장성택의 끈질긴 설득으로 화를 푼 김정일은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조총련계 선수들을 합류시키는 파격적인 조처를 했다. 북한팀의 실력이 향상됐고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진가를 발휘했지만, 포르투갈전은 북한에 현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강 위원은 “브라질전 선전은 북한 지도부와 고통 받는 주민들에게 '좋았던 그 옛날'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지만 그것이 곧 수치와 절망으로 바뀌었다”며 “이것이 김정일의 분노로 이어질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에 3대0으로 패한 북한팀은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해 짐도 못 풀고 탄광으로 직행했었다”라며 “포르투갈 선수가 ‘북한 선수들이 처벌을 받을까 걱정된다’고 했다는데, 이것이 기우(杞憂)만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