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6년 개발에 착수, 약 3년만에 시제 1호기 '수리온(SURION)'이 출고되기 까지에는 KAI(한국항공우주산업) 등 한국형 기동헬기(KUH) 개발사업팀의 피나는 노력이 숨어 있었다. 31일 출고행사는 한국이 세계에서 11번째로 헬기 개발 기술 보유국가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설계부터 체계조립, 시험평가 등 전 과정을 국내 기술진이 주도했다는 의의를 갖는다.

  • ▲ 우리나라 최초 국산기동헬기 시제1호기 '수리온(SURION)'의 출고행사가 31일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경남 사천 KAI(한국항공우주산업) 본사에서 개최됐다. ⓒ 연합뉴스
    ▲ 우리나라 최초 국산기동헬기 시제1호기 '수리온(SURION)'의 출고행사가 31일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경남 사천 KAI(한국항공우주산업) 본사에서 개최됐다. ⓒ 연합뉴스

    헬기가 날 수 있게 양력을 발생시키는 구성품인 '로터 블레이드(Rotor Blade)' 개발 과정에 참여한 KAI 정진영 차장(43)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중 '붕어빵 아저씨'로부터 큰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로터 블레이드는 전 세계적으로 기술 이전이나 공개가 극히 제한된 헬기 핵심 부품으로 복합제 기술의 '백미'로 불린다.

    정 차장은 '무식한 것이 용감하다'는 속담대로 '용감하게' 로터 블레이드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귀한' 기술이다보니 기술협력사인 유러콥터로부터 어렵사리 구한 CD자료를 공항까지 쫓아온 보안 부서에 회수당하기도 했다. 열악한 환경과 유러콥터 기술진의 비협조로 어려움을 겪던 정 차장은 어느날 사천 버스터미널 앞에서 붕어빵을 사먹다 '붕어빵 틀'이 블레이드 제작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차장은 "붕어빵을 성공적으로 굽는데 얼마나 걸리느냐"고 붕어빵 장수에게 물어봤고 "3개월 정도가 돼야 비로소 속 안의 단팥이 흘러나오지 않는 제대로 된 붕어빵을 구울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 정 차장은 "그 때 '붕어빵을 굽는 데도 3개월이 걸리는데 최신 복합제 블레이드 제작에서 한번의 실패로 좌절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다시 용기를 얻어 연구를 시작했고 이후 설계와 생산은 한 팀으로 서로 입장을 이해하고 의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출산 휴가를 끝내고 복직 여부를 두고 고민하던 김세희 KAI 선임연구원(30)의 눈에 아파트 상공을 나는 헬기 한 대가 들어왔다. 야근과 주말 근무가 다반사인 고단한 KHP업무와 엄마 없이는 혼자서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갓난 아기를 남의 손에 맡겨야 한다는 사실이 김 연구원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반가운 헬기소리에 얼른 아들을 안고 나온 김 연구원은 "은산아, 저게 헬리콥터야. 엄마는 헬리콥터를 만드는 사람이야. 헬리콥터는 은산이가 살고 있는 집보다 무거운데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어. 신기하지"라고 아들에게 얘기했다. 이후 "아직 내가 만든 헬기가 하늘에 띄울 수 있는지 확인조차 못했는데 이렇게 중단해버리면 아들에게 '헬리콥터를 만드는 엄마'라고 이야기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수리온이 모습을 드러낸 날 김 연구원은 "건강하고 예쁜 아이를 위해 정성스레 태교를 하며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같다"고 표현했다. 그는 "국내 기술로 개발된 헬기가 드디어 나왔다고 축하하지만 우리에겐 이제 시작"이라며 "지상시험을 통해 우리가 설계한 대로 잘 만들어졌는지 검증하고 2010년 3월 첫 비행 후 2년여 기간의 비행시험을 통해 각종 성능을 확인해야 비로소 우리 헬리콥터를 인증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그 때까지 아들과 소중한 순간들을 함께 하진 못하겠지만 아들에게 멋진 헬리콥터는 선물할 것이다. 20년 뒤 은산이가 군대 가면 그 때 은산이가 타는 헬리콥터가 엄마가 만든 헬리콥터일지도 모르지 않겠나"고 말했다.

    이같은 연구개발진의 노력 결과 1개 분대 중무장 병력이 탑승해 최대 140노트 이상 속도로 2시간 이상 비행할 수 있고 분당 500피트 이상 속도로 수직 상승해 백두산 보다 높은 최대 1만 피트 높이에서도 제자리 비행이 가능한 수리온이 탄생했다. 수리온은 자동비행조종장치, 종합경보방어체게, 상태감시장치 등 최첨단 기능을 장착했다.

    이날 출고행사를 주관한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형 헬기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일부에서는 외국에서 아예 사오는 것이 더 낫다며 반대하기도 했고 과연 우리 힘으로 설계와 개발이 가능할 것인지 의심도 적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강한 긍정과 도전 정신으로 혼신의 힘을 다했고, 그것도 유례없는 단 3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오늘과 같은 영광의 결실을 맺었다"고 개발 관계자들을 치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