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ㆍ관계 로비 정황을 뒷받침하는 유일한 물증으로 알려진 `박연차 리스트'가 법정에 처음으로 제출된다.

    13일 검찰과 법원 등에 따르면 `박연차 게이트'를 촉발시킨 태광실업 비서실 여직원 이모씨의 수년치 탁상용 달력과 비망록 노트(다이어리)가 내달 10일 민주당 이광재 의원의 공판에서 증거로 제출되고 이씨도 증인으로 처음 법정에 나온다.

    박 회장 곁에서 일했던 이씨는 작년까지 지난 3∼4년간 거의 매일같이 노트에 박 회장의 전화통화, 약속, 면담 내용 등 구체적인 행적은 물론 일부 정ㆍ관계 인사에게 건넨 것으로 추정되는 돈의 액수까지 자세히 적었다.

    노트에 자세한 내용이 기재됐다면 탁상용 달력에는 약식으로 박 회장이 만난 인사, 약속 시간, 장소 등이 적혀 있다.

    이들 자료는 국세청이 태광실업과 박 전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압수한 뒤 박 전 회장을 탈세 혐의로 고발하면서 검찰에 넘긴 것으로, 이후 여의도에서는 `박연차 리스트', `박연차 살생부'가 존재한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이에 검찰은 국세청에서 넘겨받은 자료 중 리스트 같은 없다며 선을 그었지만 다이어리와 탁상달력을 바탕으로 검찰이 박 전 회장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며 로비 수사를 진전시킨 점을 감안하면 단지 표현상의 문제였을 뿐이다.

    검찰은 탈세 혐의로 박 전 회장을 구속하고 정ㆍ관계 리스트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비서 이씨를 수차례 참고인으로 불러 탁상달력에 적힌 내용과 실제 금품 로비와의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진술을 받아냈다.

    검찰은 그러나 지금까지 박연차 게이트 관련자들의 재판에서 노트와 탁상달력을 증거로 내는 일을 극도로 꺼려왔다.

    구체적인 범죄 혐의가 밝혀지지 않아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된 수많은 정관계 인사들의 이름이 올라 있어 잘못 유출되면 엄청난 파장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의원의 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방어권 행사 차원에서 불리한 증거인 노트와 탁상달력을 직접 보고 비서 이씨에게도 작성 경위를 물어야겠다는 피고인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다만 검찰은 탁상달력만 전체를 법정에서 재판부와 피고인 측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노트는 이 의원과 관련된 부분만 따로 추려내 제출하기로 했다.

    노트와 달력을 직접 본 인사는 "(비서의) 성격이 워낙 꼼꼼해서인지 몰라도 왜 그렇게 자세히 기록해 놓았는지 모를 정도로 박연차씨 행적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그대로 공개되면 파장이 클 것"이라며 관심을 표시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