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화재 겪은 구룡마을 현장 여전히 참혹갈 곳 없어 천막·차량서 버티는 화재민들화재민 "분양전환형 임대주택 요구"SH는 "무허가 건축물 분양권 불가" 입장화재로 이주 갈등 재점화…해법 모색 시급
-
- ▲ 4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일대 고층 아파트 옆에 자리한 구룡마을 전경. ⓒ임찬웅 기자
"마을은 폐허가 됐는데 갈 곳이 없어 떠날 수가 없어요"최근 대형 화재로 마을이 쑥대밭이 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은 지난 1월 16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화재 여파가 가시지 않고 있었다.지난 4일 오전 방문한 마을은 흡사 난민 대피소를 연상케했다. 우리나라 최고 부촌으로 꼽히는 강남구 고층 아파트 바로 옆에 자리한 마을이지만 구룡마을은 여전히 초라하고 음습했다.마을 입구에는 비닐과 천으로 엉성하게 지은 화재민 대피소가 마련돼 있었다. 비닐로 된 대피소 입구를 지나면 중앙의 난로를 중심으로 숙식을 위한 비좁은 공간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약 28명의 여성 화재민이 생활하고 있다.대피소 안에는 낡은 이불과 생필품 등이 어지러이 놓여 있고 곳곳에 짐 가방이 쌓여 있었다. 위생 시설도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화재민들은 인근에 마을 측이 마련한 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많은 화재민이 생계비를 벌기 위해 가방을 둘러메고 일터로 향하고 있었다.대피소 주변에는 낡은 트럭 등 수십 대의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차량 뒤쪽 공간에는 이불과 옷가지가 쌓여 있어 화재민들의 고된 생활을 짐작게 했다. 65세 이모씨는 "많은 화재민이 차량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고 토로했다.이강일 구룡마을 회장(63)은 "현재 약 64명의 화재민이 대피소에서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다"며 "또 다른 10여 명은 잿더미가 된 화재 현장에서 천막을 치고 숙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
- ▲ 구룡마을 화재민 임시 대피소. 화재민들은 천막과 차량 등에서 생활하고 있다. ⓒ임찬웅 기자
앞서 지난 1월 16일 오전 5시께 구룡마을에서 원인 미상의 화재가 발생했다. 마을 4지구에서 시작된 불은 6지구로 번져 두 개 지구를 전소시켰다. 이 화재로 약 18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강남구청은 화재민들에게 호텔 등 임시 거처를 지원했지만, 해당 지원은 지난달 23일 종료됐다. 갈 곳이 없는 일부 화재민은 다시 폐허가 된 마을로 돌아와 전쟁 난민과 같은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자 화재가 발생한 6지구는 파란 방수포로 뒤덮여 있었다. 방수포 사이로는 검게 그을린 잔해와 부서진 콘크리트, 녹아내린 자재들이 드러나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마을은 폐허 그 자체였다.이 회장은 "이곳은 과거에도 십수 건의 화재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4지구에서 시작된 불이 개천을 사이에 둔 6지구로 번진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이어 "당시 많은 소방 인력이 투입됐지만 경찰 통제로 주민들이 현장에 들어가지 못했고 살림살이도 꺼내지 못했다"며 "안전을 위한 조치였다고는 하나 결과적으로 피해가 더 커진 것 아니냐는 의견이 주민들 사이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
- ▲ 화재로 소실된 후 방수포로 덮여 있는 구룡마을 6지구. ⓒ임찬웅 기자
이번 화재를 계기로 구룡마을 원주민 이주 대책 문제가 더욱 불거졌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를 사업 시행자로 내세워 구룡마을 일대 도시개발을 결정했다.시는 해당 사업지역 개발을 통해 통합공공임대주택 1107가구, 신혼부부 주거 안정을 위한 미리내집 1691가구, 분양 941가구 등 3739가구 등의 공급을 계획 중이다. 시는 올해까지 원주민 이주를 마치고 내년 상반기 착공해 2029년 준공할 계획이다.SH는 지난 2023년 '이주대책 등 기준'을 공고했다. SH는 공공주택 특별법과 토지보상법 등에 따라 분양주택 공급 대상은 ▲적법한 건축물 소유자 ▲1989년 1월 24일 이전 주거용 무허가 건축물 소유자에 한정되지만 구룡마을 내 건축물은 대부분 무허가 건축물이어서 해당 대상자가 없다고 밝혔다.구룡마을 주민인 77세 정희필 씨는 "마을에서 40년 넘게 살았는데 무허가 건축물이라는 이유로 분양주택 공급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시가 원주민들을 여태 세금도 안 내고 살다가 분양권을 요구하는 사람들처럼, 마치 죄인 취급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SH는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임대주택 지급 방안을 내놓았다. 또 ▲임대보증금 전액 면제 ▲임대료 60% 감면(차상위계층 및 기초생활수급자는 100% 감면) 등의 지원책을 마련했지만 일부 원주민들은 이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정씨는 "분양전환형 주택이 아닌 임대주택 분양은 원주민들을 셋방살이로 내모는 것"이라며 "감정평가금이 200~300만 원 나오는 집도 있는데 그 돈으로는 방 한 칸도 얻기 어렵다"라고 말했다.이어 "SH가 주거 개선을 내세워 개발을 추진하면서 정작 주민들을 내쫓는 방식으로 가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이 회장도 "이번 화재와 원주민 이주 문제가 동시에 맞물리며 주민들이 아무 보장 없이 밀려나게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이와 관련해 SH는 무허가 건축물 거주자에게 분양권을 보장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SH 관계자는 "주민들이 요구하는 분양전환형 임대주택 등의 대안은 토지법 등에 위반돼 불가능하다"라며 "기존 방침대로 임대주택 보급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