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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한성 한국방송인회 회장. ⓒ 뉴데일리
지난달 15일 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된 이강래 의원은, 오는 6월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여야가 합의한 미디어관계법에 대해 "선제적으로 공격해 막을 수밖에 없다"고 공언하여 또다시 미디어법에 대한 정치권의 일대 격전이 예상된다. 그러나 미디어의 소비자인 국민의 대다수는 그러한 '투쟁'이 과연 국민을 위한 때문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법의 실질적인 이해 당사자인 미디어수용자들은 다만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미디어환경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법을 이유로 해서 파업과 방송중단을 일삼아온 우리 방송들은 과연 어떠했는가?
지난 10년간 이념논쟁을 야기하여 국민 간에 갈등을 조장하고, 불륜·패륜 드라마와 연예인들의 농담으로 도배한 저질 오락방송을 공·민영 가릴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안방에 쏟아내지 않았던가? 일각에서는 도를 넘는 편파·저질방송이 범람하자 국민정서와 괴리된 방송이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낫겠다는 극단적인 질타까지 터져 나올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방송은 누구를 위해 존재했는가? 정권에 코드를 맞춘 이념프로로 특정정권에 봉사하였고, 저질 상업적 프로로 자사 이익에 충실했던 것이 아닌가? 이제는 방송소비자인 국민이 나서 방송이 주는 대로 받아먹을 것이 아니라 국민정서에 맞는 요리를 주문하고 반품해야 한다.
또한 국민들은 좋은 방송, 즉 유익하고 즐거운 방송을 누릴 권한이 있으며, 다양한 채널에서 질적으로 우수한 더욱 많은 프로그램을 접하기를 바란다. 15년 전 5개 채널에 불과하던 텔레비전 방송이 이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채널 수는 100개에 육박하고 있으나 실제 제작되는 프로그램은 별로 증가하지 않아 극심한 콘텐츠 기근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수한 프로그램을 제작 축적해야 할 지상파 방송사들은 10년간의 좌파정권 아래서 우수한 방송제작자 대신 노조를 중심으로 한 정치성 강한 인물을 중용하여 내부의 갈등을 조장하고, 프로그램보다는 외부 시민단체들과 연계되어 정치적인 일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지난 10년간 우리의 공중파방송은 국민의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방송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방송사들의 이런 상황이 개선, 개혁되지 않고는 방송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할 것이고 방송사 스스로의 존립에도 위기가 닥칠 것임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다.
더욱이 케이블TV·위성방송·DMB·IPTV 등 새로운 매체가 펼쳐놓은 막대한 채널은 엄청나게 많은 프로그램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이들 프로그램 수요의 상당 부분을 지상파 방송이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과거보다 프로그램 제작이 위축되어가는 양상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광고수입 감소에도 있지만 방송사의 엄청난 고임금 구조와 방만한 경영이 더 큰 근본적인 문제이다.
세계의 미디어산업은 미국의 타임워너·월트디즈니 등 거대 미디어기업들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 양대 회사의 2007년도 매출은 약 46조원과 35조원을 기록하고 있는데 한국의 지상파 3사의 전체 매출규모는 3조4000억원으로 한국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고작 2.6%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 우리나라의 전체 산업별 세계시장 점유율 중에서 최하위를 기록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거대 복합미디어 그룹이 등장하지 않는 한 언제나 영세한 방송산업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초라한 밥상 앞에 우리의 처량한 시청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국가적 필요성과 시급성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미디어관련법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모두 여야 정치인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 6월17일자 시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