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 뉴데일리
    ▲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 뉴데일리

    최근에 북한 소식이 많지만 관심을 제일 많이 이끄는 것은 김정운이 후계자로 결정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김정운 낙점설은 지금도 가설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가 후계자로 지명되었다는 소문은 올해 1월부터 많이 돌기 시작했는데 지난 1일 국정원이 정보위 소속 의원들에게 이러한 정보를 알려주었다고 하는 언론 보도가 나왔을 때부터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이 주장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간접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북한은 봉건 절대군주국가와 비슷한 점이 많지만 차이점도 없지 않다. 봉건국가에서 임금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했고 대신 및 백성 대부분은 임금의 결정을 받아들여 세자를 차대 임금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북한은 그렇지 않다. 만약 김정일이 비밀리에 후계자를 지명하고 이 결정에 대해 극소수의 고위 간부들에게만 알려 준다면 그의 사망 이후에 이러한 결정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북한에서 후계자가 정권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하려면 제일 먼저 그를 칭송하는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세습정치가 굳어지도록 하려면 북한 어용언론은 후계자의 탁월성과 위대성을 몇년 동안 시끄럽게 찬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공개적인 선전 캠페인이 시작될 때까지 김정일의 셋째 아들이 정말 후계자가 되는지를 알 수 없다. 최근 보도가 사실이라면 김정운 우상화 작업이 늦어도 금년 말 안에 시작할 것이라고 봐야 한다.

    김정운 후계자설이 확인되었을 경우 이 결정은 무슨 정치적 의미가 있을까? 국내외 언론에서 '김정운 시대'에 대한 예견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지만 이러한 예견은 순전히 추측에 의한 것이다.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의 정치 경향과 개인관계를 아는 방법은 없다. 사실상 김정운에 대해 확실히 알려진 것은 나이뿐이다. 또 그가 스위스에서 국제 학교를 다닌 것도 거의 확실하다. 이 두개의 사실만을 고려할 때 김정운 낙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먼저 김정운은 너무 젊다. 장유유서 문화가 심한 북한에서 실제 권력자가 되긴 어렵다. 특히 그는 유학을 이유로 외국에 오래 체류했기 때문에 대부분 고위간부보다 국제정치를 더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통치해야 할 나라에 대해서는 기본 상식마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토록 경험과 영향력이 너무 부족한 젊은이를 후계자로 지명하라는 결정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단 하나의 가설에 의해서만 설명이 가능하다. 즉 애초부터 김정운은 실권자라기보다 상징적인 인물로 봐야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 김정일 사망 이후에 실권을 보유할 사람들은 '젊은 장군'의 이름으로 나라를 통치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김정운 낙점에 대한 보도가 사실이라면, 북한에서 섭정정치 시대가 올 것이다.

    김정운이라는 꼭두각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직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한편으로 장성택과 같은 고위급 유력자들이 김정운 체제 구축 작업을 주도하고 통제함으로써 김정일 사망 이후에도 특권을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신의 건강이 위험해진 김정일이 장남 김정남과 차남 김정철의 능력도 믿을 수 없게 되자 차라리 원로들의 섭정정치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결국 그들의 뜻대로 되면 김정일 사망 이후에도 북한을 다스리는 사람들은 변동이 없을 것이다. 물론 김정일 없이 그들은 개혁을 시도할 수도 있고 더욱 강경한 정책을 펼 수도 있다. 그러나 가능성이 제일 큰 시나리오는 김정운 시대의 북한도 원로들의 감시 밑에 얼마 동안 같은 방향을 나아간다는 것이다. 물론 김정일의 사망 자체는 체제를 불안정하게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차차 경험을 쌓은 김정운이 원로들의 감시에 도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얼굴도 없는" 김정운이 후계로 지명되었다는 것이 사실이면, 북한에서의 변화를 기대할 근거가 별로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6월9일자 조선일보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