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9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가 9일 쓴 칼럼 '미국산 쇠고기 내가 먹어 주마'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정치인의 인기는 참으로 덧없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531만 표의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년도 안 돼서 30% 아래로 떨어졌다니 이 대통령 본인은 울고 싶은 심정이겠다.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조짐은 불길했다. 인수위가 본분을 잊고 내각 행세를 하면서 검증도 되지 않은 정책을 남발했다. 웃겨 달라고 뽑은 정부가 아닌데 영어몰입인가 뭔가는 국민들을 많이 웃겼다.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은 부자들의 동아리처럼 꾸몄다. 공천 파동의 후유증은 대선과 총선 승리의 위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거기에 쇠고기 파동이 덮친 것이다.

    쇠고기 파동은 전략 없는 외교협상의 교과서적인 사례로 꼽힐 만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을 캠프 데이비드 산장으로 초청했을 때 청와대와 외교부는 그걸 과대포장하기에 바빠 그때 큰 현안이던 쇠고기 협상의 최종 결정을 이 대통령의 정치적인 결단으로 넘겨버렸다. 지루하게 끌어오던 쇠고기 협상이 이·부시 회담 하루 전에 전격적으로 타결됐다는 사실은 정상회담 분위기를 위해서 미국에 양보한 것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반대급부로 한국이 얻은 것은 21세기 전략적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 감축의 중단 정도다. 전략적 한·미 동맹에는 한·미 동맹의 외연이 비군사·안보적인 분야로 확대된다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미국의 글로벌 군사·안보 전략,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미국의 글로벌 패권 추구에 말려들 함정도 있다. 쇠고기를 빼고도 캠프 데이비드 산장의 숙박비는 비쌌다.

    쇠고기 협상 타결의 적절한 시기는 6월쯤 미국 의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상정한 직후일 텐데 이걸 너무 빨리 던져버렸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이·부시 회담을 잘된 것으로 평가한다. 거의 동감이다. 쇠고기 협상의 투매 말고는 크게 잘못된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미국을 방문한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대선후보들인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의 존 매케인을 모두 만났다. 부시의 임기가 8개월밖에 남지 않은 걸 생각하면 이 대통령도 미국의 차기 대통령 후보들을 만나 적당한 보험을 들어뒀어야 했다. 부시 체면을 봐서 그들을 안 만나는 것이 의리의 외교라면, 부시 눈치 안 보고 그들을 만나는 것이 이 대통령이 좋아하는 실용주의다.

    정상회담을 포함한 대미외교에 전략이 모자라고 전술적인 실수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지금 많은 국민, 특히 초·중·고생을 포함한 젊은 학생들까지 집단 히스테리 수준의 광우병 패닉으로 몰고가는 반미·진보 연합전선의 나라 흔들기와 사이버 테러는 결코 정당화될 수도 용서될 수도 없다. 외교협상은 끝났다. 끝난 협상을 다시 한다면 우리에 유리한 협상을 포함한 모든 외교협상의 효과와 안정성을 어떻게 보장하는가. 더군다나 집단 히스테리를 부추기는 연합세력의 주장에는 과학적인 근거보다는 미신적인 주장이 더 많다. 상식적으로 3억의 미국인들이 먹는 쇠고기를 한국인이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해괴한 논리는 여러 세기 동안 서양사회를 풍미했던 마녀사냥을 방불케 한다.

    재협상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부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통상마찰을 각오하고라도 말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협정을 위반하는 중대 선언이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임을 미국에 이해시켜야 한다. 한국 정부는 쇠고기 시장 개방에 대한 축산농가의 이유 있는 반발과, 광우병 패닉을 부추겨 정치적인 이득을 보려는 세력, 사건만 생기면 머리띠 두르고 확성기 들고 거리로 나서는 데모꾼의 반응을 너무 쉽게 생각한 실수를 저질렀다. 그 대가로 정부는 미국에 광우병이 발생하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외교적으로 하기 어려운 말을 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해야 한다. 미국에서 그렇듯이 한국에서도 외교는 정치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다. 미국은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는 사태를 피하고 싶으면 미국 소들이 광우병에 안 걸리게 인간적·과학적으로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서 건강한 소를 기르면 될 것이다. 그렇게 믿고 나는 한우와 함께 미국산 쇠고기를 열심히 먹으련다. 미신 같은 괴담으로 혹세무민하는 세력과 무책임한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에 대해서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제재를 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