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 위협' 전제 법률 준수해야…광우병 공포 대응은 필요
  • I. 필자가 평소에 그 논리적 예리함을 존경하는 이동복 선생이 2008년 5월 초 이명박 정부가 일간지에 광고한 내용, 즉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설사 잘못된 것이라도, 일단 지켜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만일 당시 광고문안 만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동복 선생의 주장은 상황 전체를 조감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그의 주장은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하여 통과시킨 법안’의 구속력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동복 선생의 주장이 옳다면, 대한민국 국회는 ‘대국민 사기 기관’ 내지는 ‘국회가 통과시킨 법안은 지키든 말든 상관없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2008년 5월 정부의 광고문안을 자구 그대로 따른다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정부는 ‘무조건적으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을 국회가 2008년 8월 ‘국민 건강을 위협할 경우’라는 단서 조항이 붙은 법안으로 무효화시킨 것이다. 정부가 그 어떤 약속을 하던,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그 이후에 국회에서 통과시킨 법안이 우선권을 갖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그렇지 않다면 삼권분립은 도대체 왜 필요한가?

    따라서 이럴 경우 정부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가 중요하지만 논쟁의 여지는 전혀 없다. 한국 정부는 ‘국민건강을 위협하지 않을 경우’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할 권리도 의무도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정부에게 없는 권한을 어떻게 요구할 수 있고, 없는 의무를 어떻게 이행하라고 할 수 있는가?


    II. 지금 많은 사람들이 ‘수입중단’과 ‘검역중단’이라는 전혀 다른 두 조치를 혼동하고 있다.

    검역중단은 한국 내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이며, 수입중단은 아예 미국에서 한국에 쇠고기 선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치이다. 그리고 2008년 8월에 통과된 법안에 의하면 ‘국민건강을 위협할 경우’에 한하여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한국정부가 금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정부는 자국의 검사소에서 이번에 발견한 광우병이 비정형이라고 확인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정부는 검사결과를 영국과 캐나다에 있는 국제수역사무국의 거점 검사소와 공유하면서 그 내용에 대한 판단(review)을 의뢰하였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도량형에도 국제표준이 있듯이 경험이 풍부하여 오류의 위험이 적고, 국제적으로 신뢰를 받는 검사소의 판단을 미국정부도 원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지금 상황은 국제수역사무국 거점 검사소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2008년 5월 이명박 정부가 일간지에 게재한 광고가 약속한 수입중단은 관련 법안으로 인해 실행에 옮길 수도 없고, 8월 국회가 통과시킨 법안은 그 전제 조건으로 인해 적용시킬 상황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가 거점 검사소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은 검역강화와 검역중단의 두 조치 이외에는 없다.


    III. 그렇다면 검역강화, 예를 들어 100% 검역과 검역중단 중에서 어떤 것이 바람직할까?

    우선 미국산 쇠고기에서 대해서 검역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미국과 쇠고기 수입협정을 맺으면서 명시한 특정위험물질(SRM)의 포함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특정위험물질은 왜 제거하는가? 그 이유는 설사 어떤 소가 광우병에 감염되었으나 아직 발병하지 않았을 경우, 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한다면 식용에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복어에서 복어알을 제거하고 먹는 것과 다름이 없다.

    만일 이번에 발견된 미국의 광우병 소가 실은 비정형이 아니라 정형이라고(그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가정해 보자. 그렇다 하더라도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 국민의 건강을 위협한다고 할 수 있을까? 앞에서 말했듯이 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할 경우 사실상 어떤 쇠고기도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특정위험물질은 왜 제거하나? 광우병에 감염된 쇠고기라도 그 부위를 제거하면 안전하니까 제거하는 것이다! 이점은 영국에서 광우병이 창궐했을 때도 특정위험물질이 제거된 쇠고기의 식용이 금지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명백하다.

    한국정부가 검역을 통하여 미국에서 수입되는 쇠고기가 규정에 부합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혹시 광우병 소가 도축되어 한국에 수출될 경우를 가정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수입규정이 지켜지는 한, 미국산 쇠고기가 국민건강을 위협할 가능성은 없으며, 따라서 정부가 수입규정대로 검역을 강화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볼 때’ 지극히 합리적이다.


    IV. 그러나 정부의 검역강화는 그 ‘논리적․과학적 합리성’이 국민들에게 납득되었을 때에나 ‘정치적 합리성’을 획득할 수가 있다.

    5월 2일 촛불시위를 주동한 자들은 정부가 대국민 약속, 즉 수입중단을 무조건 지키라고 주장하고 있고, 심지어 일부 보수 시민단체들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여기서 검역중단이 검역강화 보다 합리적 선택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검역중단은 검역강화가 제공하는 식품안전의 모든 측면을 보장할 뿐 아니라, 추가로 국민들에게 미국에서 동물성 사료 금지 조치가 충실히 이행되고 있는 지 여부를 영국과 캐나다의 검사소의 판단을 통해 확인하겠다는 점도 함축하고 있다. 즉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국민의 건강을 위협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국내외적으로 약속한 사료정책이 지켜져야 검역중단을 해지할 수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물성사료 금지 조치는 광우병 예방에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나아가 국제수역사무국도 식품안전에 대해서는 과학적 위험평가 뿐 아니라, 위험소통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 검역강화 보다 검역중단이 훨씬 더 국민건강에 대한 정부의 포괄적 배려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위험소통의 강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검역중단으로 예상되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국내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자들의 피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정부의 항의 및 무역분쟁이 있을 수도 있다. 또 일부 국민들은 검역중단조치로 인해 정말로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할 수 있다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정부의 항의는 과학적 근거를 동반할 것이고, 그 항의가 강하면 강할수록 이번 사태에 대한 국민의 올바른 이해를 촉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동시에 이번에 발견된 광우병이 비정형일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는 점에서 무역분쟁도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미국이 한국을 WTO에 제소하여도 그것 역시 국민과의 위험소통에 도움이 된다. 또 정부는 이번 미국에서 발견된 광우병이 비정형임을 영국과 캐나다에서 확인할 때까지만 검역을 중단하겠다고 천명함으로써, 비정형성 광우병의 경우 식품 안정상 전혀 문제 삼을 필요가 없음을 국민에게 널리 알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자의 경우에도 단기적 피해는 장기적 안전성 보장으로 보상될 수 있다. 나아가 검역중단 기간 중에 국제적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한국 정부의 조치가 불필요할 정도로 과도한 식품안전 보장 조치라는 점이 밝혀진다면, 그것도 국민들과의 위험소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생각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수많은 나라 중에서 오로지 한국만 검역중단이니 수입중단이니 하면서 독불장군처럼 튀어서는 안 된다’는 류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2008년에 무슨 일이 한국에서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일본이나 대만에서도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과장하였지만, 한국에서처럼 100일간 수도의 중심부를 무법천지로 만들지는 않았으며, 그런 광기를 ‘촛불정신’이라는 미명하에 민주당처럼 당 강령으로 숭배하지도 않는다.

    2008년이나 2012년이나 한국에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다면 만면에 미소를 짓고 ‘미치도록’ 즐거워하는 사람, 즉 한국형 인간광우병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이 충분히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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