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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1일 오피니언면 '조선데스크'에 이 신문 이지훈 경제부 차장대우가 쓴 <'국가는 기업이 아니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기업인 이명박은 서울시장 재임 기간 동안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래서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Krugman·프린스턴대)은 1996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국가는 기업이 아니다(A country is not a company)'라는 칼럼에서 "기업 경영과 국가 경영은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국가 경영은 기업 경영자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이를테면 국내 최대 기업 집단인 삼성그룹의 종업원은 약 22만 명에 불과한 반면, 한국의 인구는 4800만 명으로 그 200배가 넘는다.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까지 감안해야 하므로 국가가 고려해야 할 변수는 200배가 아니라 200의 제곱, 즉 4만 배로 늘어나게 된다.
게다가 기업의 경우는 아무리 규모가 크고 사업 분야가 다양하더라도 핵심 전략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일관성을 찾을 수 있다. 반면, 국가는 전혀 성격과 철학이 다른 수십만 개의 사업부가 공존하는 셈이다.
따라서 국가 경영은 기업 경영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즉 정부는 큰 원칙만 정하고 그 세부적인 운영은 경제주체들에게 맡겨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 CEO는 기업의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데 앞장서 나서야 하지만, 정부가 몇 개의 핵심 산업을 지정해 육성하는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둘째, 기업 경영은 다른 부문의 희생을 생각할 필요 없이 밀어붙일 수 있는 반면, 국가 경영은 한 부문이 잘되면 다른 부문이 피해를 볼 수 있는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기업의 경우 CEO의 리더십과 전략에 따라서는 모든 사업 부문에서 고용과 투자가 동시에 늘어나고, 시장점유율이 계속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경우 모든 기업이 동시에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적어도 내수시장의 경우엔 한정된 소비자 층을 놓고 기업들이 서로 경쟁하기 때문이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국가 회계는 기업 회계와 다르고, 노동법은 기업의 인사관리와 다르고, 금융통화정책은 기업 재무관리와 다를 수밖에 없다.
크루그먼의 충고에 따른다면, 이명박 당선자가 "정부가 용 쓰면 기업이 귀찮아진다"면서 규제 완화를 부르짖는 것은, 정부 역할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옳은 판단이라 할 수 있다. '준법(遵法)'을 강조하는 것 역시 일반적인 원칙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반면, 대운하 사업이나 통신료 인하 문제 등은 정부가 기업 전략처럼 지나치게 디테일(detail)하게 접근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당선자는 또 어떤 정책을 펼 경우 그에 따른 부작용을 살피는 데 더욱 세심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외국인 투자 유치를 금과옥조인양 부르짖으면서 이로 인해 경상수지 적자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OECD 국가에서 CEO 출신이 국가 수장이 된 것은,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Berlusconi) 전 총리나 미국의 허버트 후버(Hoover) 전 대통령 등 손에 꼽을 정도이며, 그들의 성과 또한 논란의 대상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석학의 충고와 전례들을 살핌으로써 '기업 경영을 잘했으니 국가 경영도 문제 없다'는 과도한 자신감을 경계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