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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명박'을 두고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한나라당 '박·정·이(박근혜 전 대표, 정몽준 의원, 이재오 의원)'가 한자리에 모여 관심을 끌었다. 11일 서울 통의동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집무실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의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주변 4개국 특사단 면담 자리에서다.
정몽준 의원이 이끄는 미국특사단과 이재오 의원이 단장인 러시아특사단은 이상득 의원의 일본특사단과 함께 회의 시작전 미리 도착해 자리잡고 있었다. 박 전 대표의 중국특사단이 정확히 3시에 맞춰 회의실에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순간 긴장감이 돌았다.
박 전 대표는 전날 "좌시하지 않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지하겠다"면서 4월 총선 공천과 관련한 당내 갈등에서 전면에 나선 상태다. 또 이 의원은 '오만의 극치'라는 박 전 대표의 비판을 받고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났으며, 정 의원은 그 공석을 노려 미미한 당내 기반을 다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 의원 역시 최고위원직 재도전 가능성을 시사한 상황.
회의 전 정 의원과 이 의원은 이 당선자의 자리를 가운데로 하고 좌우에 앉아 있었으며, 박 전 대표의 좌석은 맞은편 이상득 의원 옆에 마련됐다. 박 전 대표는 정 의원과 이 의원 뒤를 지나쳐 자신의 자리쪽 의원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건넸다. 뒤늦게 박 전 대표는 맞은 편 멀찌감치 앉아있던 이 의원에게 "안녕하세요"라며 목례를 했고, 이 의원은 일어서서 허리를 굽히며 "네, 네"라고 인사했다. 정 의원은 초등학교 동기동창인 박 전 대표에게 걸어가 "저하고도 악수하시죠"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박 전 대표도 일어나 악수했다. 다시 자리에 앉은 박 전 대표의 표정은 처음과 같이 굳어 있었다.
이 당선자와 함께 사진 촬영할 때도 냉랭한 분위기는 그대로 이어졌다. 바로 왼쪽에 위치한 이 의원과의 간격에 비해, 오른쪽에 선 박 전 대표와 이 당선자의 거리는 표가 날 정도로 멀어 있었다. 한 참석자가 이를 지적하자 박 전 대표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섰다. 정 의원은 분위기 전환을 꾀하려는 듯 "'김치' 하시라"고 농담을 던졌고, 이 당선자는 "저는 '김치' 하면 눈이 감겨서 안돼"라고 맞받았다.
이 당선자는 "(박 전 대표를 특사로 파견한 것은) 우리도 (중국을) 크게 배려한 것"이라며 박 전 대표를 치켜세웠다. 또 박 전 대표와의 대화를 끌어내기 위해 "(내주 방한하는 중국특사) 왕이 부부장을 만난 적이 있느냐"고도 했지만, 박 전 대표는 "못 만나봤다"고만 했다. 왕이 부부장 이야기가 잠시 이어지자 정 의원은 "그 분이 테니스를 잘 친다"고 거들었고 이 당선자는 웃었다.
40여분간의 회의를 마친 후. 가장 먼저 회의장을 나서는 박 전 대표를 이 의원이 따라 나섰다. 이 의원은 박 전 대표가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배웅했지만, 의례적 인사를 나눌 뿐 끝내 악수를 나누진 않았다. 두 사람이 자리를 비운 곳에서 정 의원은 각국 특사단 사이를 오가며 "잘 다녀오시라"고 손을 내밀었다. 정 의원은 비서실 관계자들과도 여유있는 표정으로 인사했다.
비공개 자리를 포함한 면담에서 당내 공천 문제나 국무총리직 제안과 같은 현안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었다고 주호영 대변인은 전했다. 한미일 협력강화에 중국의 오해가 없도록 하고, 중국 국내법 개정으로 인한 우리 기업의 불편함을 챙겨달라는 이 당선자의 당부에 박 전 대표는 "그렇게 하겠다"고만 짧게 답했다고 했다.
이날 박 전 대표는 시종 냉랭한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이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최근 불편한 심기를 달래려는 듯 성의를 보이려 애썼고, 정 의원은 수시로 분위기를 이끌고 많은 움직임을 보이며 여유를 나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