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11일 서울 통의동 당선자 사무실에서 내주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 4국에 보낼 특사단 대표들을 만나고 각국에 보낼 친서를 전달했다. 이날 면담에서는 공천 문제로 강하게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게 관심이 모아졌다.

    이 당선자와 박 전 대표는 당 공천 문제, 국무총리직 제의 등 정치현안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비공개 회의에서도 이같은 내용의 논의는 일체 하지 않았다고 주호영 대변인은 전했다. 이 자리에는 정몽준 미국특사단장, 이재오 러시아특사단장, 이상득 일본특사단장을 비롯해 권철현 전여옥 황진하 유기준 유정복 안경률 의원 등 특사단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접견시각인 오후 3시 정각에 맞춰 회의장에 도착한 박 전 대표는 이재오 정몽준 의원 뒤를 지나쳐 전여옥 권철현 이상득 의원과 악수하며 인사했다. 맞은 편 이재오 의원을 발견한 박 전 대표는 "안녕하세요"라며 목례했고 이 의원은 일어서 허리를 굽혀 "네, 네"라며 마주 인사했다. 정몽준 의원은 박 전 대표에게 다가가 "저하고도 악수하시죠"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곧이어 입장한 이 당선자는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했고, 박 전 대표에게 특별한 관심을 표했다. 그는 "오셨어요"라고 인사했고, 박 전 대표도 자리에서 일어나 "안녕하세요"라고 답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표정은 줄곧 차가왔다.

    대표단 사진촬영 시간에도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냉랭한 기운은 흘러나왔다. 이 당선자를 중심으로 왼쪽에 박 전 대표와 이상득 의원이, 오른쪽에는 이재오 정몽준 의원이 자리를 잡았다. 이 당선자와 이재오 의원 간의 거리에 비해 박 전 대표와의 간격이 너무 넓다고 한 참석자가 지적하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섰다. 정몽준 의원은 "'김치'하시라"고 농담했고, 이 당선자가 웃으며 "저는 '김치'하면 눈이 감겨서 안돼"라고 받아쳤다. 권철현 의원도 "(서있는 순서가) 멀리 가는 순서대로인 것 같다"고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지만 박 전 대표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자리에 앉은 후 이 당선자는 박 전 대표가 담당한 중국에 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나눴다. 이 당선자는 박 전 대표를 보며 "(내주 방한하는 중국특사인) 왕이 부부장을 만나본 적 있느냐. 중국서 위치가 상당하다"고 말했고, 박 전 대표는 "못 만나봤다"고 짧게 답했다. 정몽준 의원은 옆에서 "그 분이 테니스를 잘 친다"고 거들었다.

    당선자 비서실 의전팀장인 권종락 전 주아일랜드 대사가 "왕이 부부장은 공산당 서기이며 장관급으로 후진타오 특사 자격"이라는 설명에 이 당선자는 "중국이 이번에 특별히 배려한 것 같다"면서 "우리도 크게 배려한 것"이라고 박 전 대표를 치켜세웠다. 이 당선자는 또 "왕이 부부장이 오는 14일 오찬을 함께 하도록 돼 있다"는 권 전 대사의 보고 이후 박 전 대표에게 "그 때 다시 뵙겠다. 점심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40여분간 계속된 회의를 마치고 난 후 박 전 대표는 가장 먼저 회의장을 나섰으며, 이재오 의원은 뒤따라나와 엘리베이터까지 박 전 대표를 배웅하면서 성의를 보였지만 끝내 악수를 나누지는 않았다. 정몽준 의원은 이재오 의원, 권철현 의원 등에 "잘 다녀오시라"면서 분위기를 주도했다.

    배석했던 주 대변인은 "주로 상대국에 가서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내용의 대화였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한·미·일 협력강화를 강조하다보니 중국을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가질 수 있으니 그런게 아니라는 뜻을 잘 전해달라"는 것과 "중국 국내법 개정으로 우리 진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는데 그 점을 알아보고 중국 당국에 협조 구할 일이 있으면 해달라"고 박 전 대표에게 당부했고, 박 전 대표는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 대변인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