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신창이가 된 원내 제1당을 손에 쥔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통합신당) 대표는 '쇄신'과 '통합'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친노 그룹 2선 퇴진' '당·정·청 핵심인사 2선 후퇴' 등 인적쇄신 요구가 쏟아지고 있지만 손 대표의 첫 발걸음은 보폭이 좁다. 당에 '강력한 인적 쇄신 드라이브'를 걸기에는 자신의 세력이 아직 미비하다는 판단에서다. 

    11일 서울 당산동 당사에서 취임식과 기자회견을 가진 손 대표는 당내 문제에 '자극적 표현'을 쓰지 않았다. 미리 배포한 기자회견문의 일부 표현도 완화해서 읽어 내려가는 등 '반 손학규 진영'에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대표로 선출된 직후 탈당하며 "손 대표가 이끄는 신당은 자신의 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어떤 정체성도 없이 좌표를 잃은 정당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공격한 이해찬 전 국무총리에 대해서도 "안타깝고 유감"이라고만 말했다. 이 전 총리 탈당으로 인해 친노 성향 의원들의 추가 탈당 우려가 나오고, 충청과 경기 지역 일부 의원들이 이회창씨가 만든 '자유신당'(가칭) 행을 고민하는 상황이니 취임 초부터 이들을 자극해 스스로 분당 사태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중으로 읽힌다.

    실제 손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모든 계파를 떠나 대통합민주신당이 화학적으로 결합해 새로 태어나도록 하겠다"면서 당 화합을 강조했다. 최대 관심사인 '공천' 문제는 "친노라는 말을 하는데 내 머리 속에는 '친노 반노' 이런 개념이 없다. 친노 그룹이라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 어쩌다가 그 그룹의 카테고리로 끼워져 있는 경우다. 일방적으로 어떤 사람들을 특정 카테고리로 묶어 배제하는 일은 결코 현명한 자세가 아니다"면서 친노 그룹과 당·정·청 핵심인사들을 향한 퇴진 요구를 비껴갔다. 현역 의원 50여명 교체 필요성을 언급한 김호진 쇄신위원장의 발언에는 "몇 퍼센트다. 물갈이다 이런 기준을 억지로 내놓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충청 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일부 의원들의 이탈 조짐에 대해서도 손 대표는 "언론 보도를 본 뒤 내가 좀 알아본 바로는 보도된 내용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면서 이들의 자유신당행 가능성을 일축했다. 손 대표는 "물론 우리 정치에서 지역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통합신당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 태어나 새롭게 출발할 때 충청권 민심은 크게 달라질 것이고 소속 의원, 당원과 당직자들의 자세도 안정될 것"이라며 이들의 이탈 가능성을 차단했다.

    취임식과 기자회견 내내 자세를 낮추고 '당 화합'에 신경쓰던 손 대표는 자신의 '정체성'과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점을 문제 삼는 대목에서는 다소 불쾌한 듯 한 반응을 비췄다. 손 대표는 "아직도 한나라당을 문제 삼는다는 것은 지난번 대선 경선 과정에서 나를 지지했고 이번 대표 선출에서 나를 선택해준 당원들들에게 예의가 아닐 것"이라고 반격했다. 그는 "과거에 우리를 붙잡아 둬서는 안된다. 과거에 우리를 붙잡아 두면 오직 쇠락과 퇴보와 멸망의 길만 있다"고 경고했다.

    손 대표는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회동제안에 "아직 구체적으로 직접 보고 받은 바 없다"면서 "(회담의) 화제와 대상 등을 면밀히 검토해보도록 하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