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8일 당선 이후 처음으로 국회를 찾았다.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각 정당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 였는데 90여 분간 머문 뒤 국회를 나서는 이 당선자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배웅을 한 임채정 국회의장에게 포옹까지 하며 "좋은 시간 됐어요"라고 인사를 건넸지만 준비된 차량에 탄 뒤 이 당선자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당선 이후 국회와의 첫 상견례인 만큼 대화주제도 크게 무겁지 않은 내용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첫 만남 부터 야당의 견제와 쓴소리가 나와 이 당선자를 적잖이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이 당선자는 이날 55분간 각 정당 원내대표 및 정책위의장을 만난 뒤 23분간 임 의장 등 국회의장단을 예방했다. 이 당선자는 약속시간을 정확히 맞췄다. 오전 10시 각 정당 원내대표단과의 회담 약속을 한 이 당선자는 9시 58분경 국회에 도착해 미리 마중 나온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 등과 함께 10시 정각 회담장소인 국회 귀빈식당에 입장했다.
오히려 대통합민주신당(통합신당)의 김효석 원내대표와 김진표 정책위의장이 30초가량 뒤늦게 도착했다. 이 당선자는 회담 초반부터 몸을 낮췄다. '이명박 정부'의 순조로운 출발 여부가 2월 임시국회에 달려있는 만큼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야당의 협조가 불가피 한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이 당선자는 원내대표단을 보자 "TV에서 자주 보던 분들이네…"라며 가벼운 농을 던진 뒤 "바쁜 시간 내줘서 감사합니다"라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곧바로 "정부조직법 등 관련 법안이 어느 정도 확정되면 의회에 먼저 보고를 드리겠다"며 2월 국회에서 처리될 새 정부관련 법안과 국무총리 및 각료 인사청문회에 대한 당부를 했다. 그러나 대선 앙금이 아직 남아있는지 이 당선자와 야당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정부조직법 등 관련 법안 통과에 대한 야당의 협조를 부탁한 이 당선자가 안상수 원내대표(한나라당)를 향해 "한나라당에도 잘 부탁합니다"라고 말하자 통합신당 김진표 정책위의장은 "잘 안 맞으십니까? 여기서 부탁을 하시고…"라며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통합신당의 김효석 원내대표가 가세했다. 김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처럼) 국정의 발목을 잡는 야당은 안하겠다"면서 비꼬았다. 그러면서 "아쉬운 것은 한나라당이 금년 (청와대의) 신년 하례회에 참석 안했고 몇 년 동안 참석을 안했는데 저희는 그렇게 안하겠다"고도 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어 "도와드릴 준비는 항상 돼 있다"며 협조의사를 밝히면서도 "국정운영은 여야가 함께 하는 것이고 야당으로서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통해 하는 것"이라며 인수위원회를 꼬집기 시작했다.
김 원내대표는 "인수위가 최근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정책을 쏟아내는데 설익은 내용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다. 국회에서 논의할 것도 있고 국민의 여론을 들어야 할 것도 있는데 막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다"고 지적한 뒤 "오늘 첫 만남이라서 좋은 말씀만 드리고 싶지만 몇 가지 쓴소리를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에 이 당선자는 "인수위 보도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될 것 같다. 보도경쟁이 되다보니 사실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것이 보도돼 나가기 때문에 확정된 것이라 볼 수 없다. 설익은 게 막 나가고 확정되지 않은 것도 있고…"라고 해명한 뒤 "새로운 정부가 정치적 목적이나 당리당략은 일체 없을 것이고 현안 문제에 있어 행정부와 의회의 새로운 모델을 한 번 만들어 보겠다"며 김 원내대표의 우려를 불식시키려 노력했다.
이렇게 마무리 될 줄 알았던 신경전은 민주당 최인기의 '대선 투표율 발언'으로 가열됐다. "표차가 압도적이어서 축하를 드린다"고 인사를 건넨 최 원내대표는 곧바로 "(이 당선자가) 고려해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나는 유권자가 3700만 명인데 투표율은 63%다. (이 당선자는) 실질적으로 30.5%의 지지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선은 역대 대선 중 가장 큰 표차로 승리했지만 투표율 역시 가장 낮은 수치다.
최 원내대표는 "투표에 참여 안했거나 반대했던 분의 입장과 마음, 주장을 늘 생각하며 국정을 이끌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한 뒤 "특히 호남의 경우 (이 당선자의 지지율은) 9%를 보였지만 (호남이) 소외감을 갖지 않도록 배려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같은 당 김송자 원내수석부대표는 "인수위 구성에서 지역을 체크해 보니까 호남 사람이 별로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 당선자는 "뒤에 실세는 거의 호남사람이다. 그래서 불만이 많다. 지역 연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받아쳤다.
회담이 끝난 뒤 일부 취재진과 만난 통합신당 김 원내대표는 "새 정부가 출발하는데 도와주겠다"면서도 이 당선자에게 "7% 경제성장이란 숫자에 집착하면 안 되고 대운하도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CEO는 목표를 정하면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게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