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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범여권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후보가 정동영이다. 그런데 정동영을 보면 범여권의 시국인식이나 국가적 과제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진부하며 유치한 수준의 상징조작에 매달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비유하자면 21세기에 살면서도 아직 구석기 시대의 돌도끼를 휘두르며 싸우면서도 그것이 마치 진보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구석기 시대의 하급전사 같다.
그는 아직도 ‘수구냉전 대 민주평화미래’라는 낡은 구도를 사용하고 있다. 국민은 이미 민주니 평화니 또는 미래니 하는 화려한 용어들이 국민들을 속이는 속임수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민주가 계급혁명을 통한 민중정권의 수립을 의미하며 평화라는 것이 북한의 독재자에게 굴복하여 그에게 평화를 구걸하는 것이며 미래란 것이 그들의 실패를 은폐하기 위한 선전용어란 것을 다 알고 있다.
한편 국민은 그들이 수구냉전이라고 무조건 부정하는 세력이야말로 바로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으로 만들고 중산층을 육성한 자유애국산업세력이란 것을 알고 있다. 정동영이 거품을 물고 폄하하든 박정희 대통령을 지금에 와서 경제를 발전시킨 대통령으로 추앙하는 것은 스스로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국민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저들이 수구냉전세력이라고 부정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대한민국을 경제적으로 성장시켰으며 그로 인해 중산층이 육성되었고 민주화의 꽃을 피울 수있었던 애국세력이란 것을. 그러나 저들이 민주평화세력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대한민국에 반역하고 김정일에 굴복하여 퍼다주기 정책에만 매달리는 한심한 구걸족이란 것을 국민은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평화가 정당한 평화가 아니라 김정일에 굴종하여 김정일이 핵무기를 가져도 단지 김정일 비위만 맞추면 문제없다는 식의 비굴한 패배주의에 찌든 굴종주의자라는 것을 국민은 잘 알고 있다.
정동영은 개성공단을 자신의 업적으로 치켜세우며 그것을 청계천과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에서 성공한 한국기업은 없다는 사실을 그는 숨기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성공단에서 북한으로 흘러들어가는 달러화가 북한 핵개발의 자금이 되었다는 이적행위였다는 것도 숨기고 있다. 그러나 청계천이야말로 낡은 삼일고가도로에 대한 창의적인 대안이었으며 그 당시로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혁신적인 사업이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청계천은 성공한 사업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정동영은 사업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보고 그에 대한 과장된 평가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정동영은 또한 토목경제를 우스운 것으로 폄하하고 있다. 마치 IT산업 시대에 토목을 논하는 것은 마치 구시대적 발상인것처럼 치부하고 있으나 이 또한 종합적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무리 첨단시설을 하여도 기초는 토목이다. 아무리 IT산업을 육성하려고 하여도 토목이 우선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속도로 건설은 1960년대에나 맞는 사업이지 지금은 맞지 않는 사업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경제의 기본도 모르는 소리다. 지금 얼마나 많은 도로가 건설되고 있는지 현실을 직시한다면 경제를 토목경제니 하고 폄하하지는 못할 것이다. 운하가 지금 건설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토목공사가 아닌 최첨단 물류시스템과 융합된 최첨단 토목공사란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는 경제에 대해 논할 자격조차 없다.
그는 또는 보수애국세력을 마치 부패세력이며 과거세력인양 떠들고 있다. 그러나 부패는 어느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병리적 사회현상일뿐 어느 특정 세력만이 부패하다고 말할 수 없는 현상이다. 노무현 자신이나 노무현 정권에서 발생한 온갖 부패 사건만 보더라도 그의 말은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자유를 확장하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자유민주세력을 과거세력이라고 욕하는 것도 그가 무식하다는 것 외에 말해주는 것이 없다. 자유와 성장이 왜 과거현상인가?
오히려 자신들이 대변하는 민중민주주의나 김정일 독재자에 대한 굴종주의나 헌번 제3조를 개정하자는 그의 주장 등을 종합해서 판단하면 정동영이 대표하고 있는 세력이야말로 과거지향적 세력이며 부패세력이다.
정동영은 또한 자신은 가족행복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이것 역시 무식의 소치다. 행복은 주관적 느낌으로서 정책적 지표로 사용할 수 없다.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을 향상시키는 일뿐이다. 다시 말해 거시경제지표를 기준으로 실업을 해결하고 물가를 안정시키고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등의 정책지표를 통해 개별 가정, 또는 개인들이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회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곧 국가가 할 일이다. 행복을 정책목표로 내세운 정동영은 그래서 단순한 선동꾼에 불과하다.
정동영은 보면 친북좌파세력의 허상을 볼 수 있다. 그는 지금 선진국 문턱에 서있는 대한민국을 마치 1960년대의 후진국인 것처럼 착각하고 정치적 공약과 구호를 마구 쓰고 있다. 정동영은 마치 아직도 돌도끼를 휘두르는 구석기 시대의 하급전사 같은 모습으로 돈키호테처럼 날뛰고 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그런 그에게 속을 국민은 이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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