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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7일 사설 '누가 지금 이회창씨를 부른다는 말인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회창씨가 결국 오늘 대선 출마를 발표한다. 그의 움직임이나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출마는 이미 상당 기간 전에 결심했고, 그동안은 기회를 봐온 것이라고 한다. 이씨가 원칙을 지켜서 국가의 원로로 남기를 바랐던 고언들은 처음부터 그의 귀에 들릴 리가 없었던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선거는 다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다들 ‘내가 국회의원이 돼야 하는 명분’을 들고 나오지만 본인도 유권자도 거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포장용 명분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대선은 다르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누구나 나오는 것이 아니다. ‘시대’와 ‘국가’와 ‘국민’이 자신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확신과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 병이나 과대망상증에 걸린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이회창씨 측근들은 “(이씨가)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고 한다. 이 시대가 나를 부른다고, 이 국가가 나를 부른다고, 이 국민이 나를 부른다고 쉽게 들이댈 수 없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때 나돌던 “야당 후보가 약점이 많아서 대타용으로 나온다” “야당 후보가 사망할 수 있어서 내가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스스로도 궁색하다고 생각했는지 슬그머니 사라졌다. 결국 이씨는 시대와 국가와 국민이 불러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자신만의 명분을 만들어 나온다는 말이다.
이씨는 오늘 ‘정권 교체’를 명분이라고 들고 나올 것이다. 이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씨가 가장 잘 알 것이다. 1997년 대선 때 한나라당의 결정적 패인은 이인제씨의 탈당과 출마로 인한 분열이었다. 2002년에도 한나라당은 정몽준씨와 김종필씨가 반대편에 서는 바람에 패했다. 그런 분열로 대선에서 두 번이나 패했던 사람이 바로 이씨 자신이었다. 지금 이씨의 출마는 이씨가 스스로 속한다고 주장하는 그 진영을 분열시켜 정권 교체가 아닌 정권 연장을 돕는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과 그 후보의 높은 지지율에 이씨가 보탠 것은 하나도 없다. 그 지지율은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이 싸우기도 하고 돕기도 하면서 쌓아온 것이다. 그렇게 밥상이 차려지자 이씨가 슬그머니 숟가락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시대도 국가도 국민도 부르지 않는데 기회가 올 듯도 하다고 해서 나온다면 그것은 기회주의다.
현행 선거법은 당내 경선에 출마했던 사람이 대선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세계에 유례가 없을 규정이다. 이 규정은 경선 불복과 내부 분열에 질린 한나라당이 주도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씨처럼 그 규정을 돌아서 이렇게 뒤통수를 치는 일은 한나라당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이씨 같은 사람을 막기 위해 한나라당은 ‘경선 때 당원이었던 사람은 출마할 수 없다’는 규정까지 선거법에 추가해야 할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