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 전, ‘이회창 불가론’이 있었다. 이회창 씨만 아니면 정권 교체가 가능한데, 이회창 씨가 후보가 되는 이상 정권 교체는 물 건너간다는 말이었다.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예비 후보가 제기한 것이었지만, 적지 않은 한나라당 사람들이 여기에 내심 동의하고 있었다. 실제 결과도 그렇게 나왔다.

    지난 대선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열심히 뛰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열심히 한 의원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의원들도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왜 이회창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리가 궁색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작 하는 것이 김대중 정권의 실정을 강조하고 노무현 후보의 자질을 문제 삼는 네거티브 성격의 것이었다.

    한 마디로 한나라당이 후보를 잘못 뽑았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첫 번째는 몰라서 그렇지만, 두 번째는 다른 대안을 찾았어야 했는데, 이회창 총재가 당을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대안을 모색할 수가 없었다. 예컨대 정몽준 의원이야말로 보수 중의 보수인데,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를 한 것 자체가 한나라당으로서는 엄청난 전력 손실이었다.

    요컨대 지난 두 차례의 대선 실패는 다른 핑계를 댈 수가 없다. 바로 이회창 씨 본인의 귀책사유에 의해서 두 번씩이나 한나라당이 패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2002년 대선이 끝난 후에 한나라당 당원과 지지자들 중 누가 이회창 씨에 대하여 비난을 한 적이 있는가! 오히려 가슴 아파하고, 집회 같은 데서 만나면 따뜻한 마음을 보내지 않았는가! 어떤 연유에서 정권 창출에서 실패했든, 우리가 뽑은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이회창 씨는 그런 당원들에게 무엇으로 보답하려는가! 이회창 씨는 “좌파 정권 10년을 끝장내야 하는데, 지금 이대로는 그것이 불가능해서 출마한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이미 이회창 씨에 대하여 레드카드를 발부했었다. 이회창 씨가 얻은 천만 표는 누가 나와도 얻을 수 있는 최소치의 표였고, 오히려 앞서 말한 대로 다른 사람이 나왔으면 더 얻을 수도 있는 표였다. 하물며 당내 경선을 거치지도 않았고, 한나라당을 탈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표를 얻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금년 어떤 모임에서 이회창 씨는 이명박 후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대선 후보가 외교 안보는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경제만 강조하는 것은 인기영합주의다”는 요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회창 씨는 대선에 실패한 후 지난 5년 동안 외교 안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 묻고 싶다. 대통령 3수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해 온 것으로 결과가 말해주고 있지 아니한가!

    이회창 씨가 그런 말을 하고 다닐 때, 이 땅의 수많은 실업자들이 거리에서 방황하며 경제를 살려 달라고, 일자리를 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귀족 출신으로서 고생 한 번 안 해 본 이회창 씨가 서민들의 애환을 알기는 하는가! 그래서 ‘경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회창 씨는 왜 우리 국민들이 ‘경제 대통령’을 원하는지를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불신 중의 하나가 이명박 후보가 서민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는데, 그런 귀족적인 지도자를 우리 국민들은 원하지 않는다.

    그 동안 이회창 씨는 과대 포장되어 있었다. 아니, 우리가 이회창 씨의 실상을 잘 몰랐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인지를 진작 알지 못했던 것이 억울할 뿐이다. 원칙주의자도 아니고, 대쪽도 아니다. 그저 권력욕에 사로잡힌 구시대 정치인일 뿐이다. 5년 전에도 그런 이미지가 강해 노무현 후보에게 밀렸는데, 지금이야 일러 무엇하리요!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때, 자신은 무소속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용납이 안 된다. 치사하고 뻔뻔스럽기 이를 데 없다.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 후보로 선출되었어도 이회창 씨는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틀림없이 나왔을 것이다.

    이회창 씨의 출마는 100% 정권 교체의 길을 어렵게 만드는 일이다. 이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이회창 씨와 그 측근들만 모르고 있다. 간신배들의 얘기만 듣고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할 만큼 이회창 씨는 지금 평상심을 잃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출마가 대단한 애국적인 선택인 양 착각하고 있다. 한나라당 당원과 지지자들의 절규도 들리지 않는다. ‘내 깊은 뜻을 너희가 모르고 있다’는 식의 나르시시즘에 깊이 빠져 있다. 이런 사람이 당의 총재와 대통령 후보였으니 한나라당이 잘 될 수 있었겠는가!

    이회창 씨에게는 미래가 없다.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이기고 지고를 떠나 이회창 씨가 저지른 역사적인 죄악은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마치 ‘이완용 일가’처럼 자손대대로 악명을 떨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과거 역시 없다. 그에게 법관 시절 붙여진 ‘대쪽 판사’의 명예도, 천만 표의 영예도 다 사라질 수밖에 없다. 대쪽이 갈대가 되었을 뿐이다. 아마도 판사 시절부터 권력욕으로 점철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로 일구어 온 자랑스러운 우리 헌정사가 이회창 씨 한 사람 때문에 얼룩지게 되었지만, 역사는 전진하게 마련이다. 그런 반칙과 몰염치로 똘똘 뭉쳐 있는 사람에 대하여 우리 국민들은 분명한 심판을 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제2의 이인제’가 아니라 ‘이인제보다도 훨씬 야비한’ 이회창 씨를 지지할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이회창 씨 한 사람 때문에 보수 진영 혹은 한나라당이 도매금의 비난을 받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다. 이제 한나라당 역사에서 이회창 씨의 흔적을 지워야 한다.

    2007년 11월 7일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조종(弔鐘)이 울리는 날이다. 아! 슬프고 슬프도다. 참담한 심정 가눌 길 없다. 오늘이 훗날에 ‘제2의 이회창’이 나올 수 없는 교훈의 날로 기억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오는 12월 19일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신자의 말로(末路)가 어떻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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