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란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국제적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다시 말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국제적 규약 또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을 때 달성되는 것이다. 단지 말로만 평화라고 외친다고 평화가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인민을 탄압하는 독재자와 평화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런데 북한에 존재하는 역사상 가장 악랄한 독재자에 대해서는 한국의 친북좌파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가 굴종적인 자세로 평화를 구걸하고 있다. 그러나 독재자에게 굴복하여 외양만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진정한 평화도 아니며 평화를 달성할 수도 없다.

    독재자 김정일에 대해 관대한 것은 그의 독재로 인해 기본적 인권이 말살된 북한 동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가혹한 처사다. 독재자와 손잡고 무고한 인민을 탄압하는 독재자의 공범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친북좌파의 위선적이고 악랄한 굴종적이며 반역적인 활동으로 인해 한국도 미국도 다른 나라들도 김정일의 군사독재는 불문에 부치고 단지 그를 살려주는 것이 마치 평화인양 착각하고 그와 무슨 평화협정 같은 것을 맺겠다고 한다.

    특히 노무현은 김정일에 굴종하는 것이 마치 평화인양 착각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평화가 아닌 것을 알지만 김정일에 충성하는 한 방편으로 평화를 내세우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비무장지대가 마치 평화로운 지역인 것처럼, 한국군과 북괴군이 삼엄하게 대치하고 있는 중간 지대를 마치 아무런 일이 없는 듯이 부부가 함께 나란히 걸어가면 그 지역이 마치 평화지역이 되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

    그는 또한 독재자의 독재를 찬양하기 위해 북한 인민이 노예와 같이 동원된 아리랑 공연을 웃으면서 관람하면 마치 그것이 평화인양 위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의 전도된 세계관, 전도된 미적 감각, 전도된 예술관을 반영하는 병적인 공연일 뿐이다. 그 공연을 관람함으로써 노무현은 김정일의 최악의 독재정권은 마치 무해한 정권인 것처럼 위장하게 된다. 알듯 모르듯 그는 북한 동포 탄압의 공범이 된 것이다.

    지금 6자회담에 참가하고 있는 나라들도 마치 북한의 핵시설을 잠시 가동을 중단시키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친북좌파반역정권이 이렇게 6자회담을 변질시킨 것이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국가들 마저 친북좌파의 이런 농간에 놀아나는 것을 보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김정일을 추종하고 그를 찬양하고 그의 위력에 감탄하고 그의 폭력에 탄복하는 위선자들이다. 김정일의 독재를 인정함으로써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고 비겁한 자들이다. 이들은 평화가 무슨 독재자에게 갖다 바칠 선물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든지 아니면 그렇게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고 믿는 바보들이다.

    이들이 기억해 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이들이 ‘평화’로 장난칠 때 북한 동포의 고통은 깊어가고 길어만 간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이성을 잃고 거짓 평화를 노래할 때 독재자는 더욱 더 의기양양해져 마치 자신의 반인륜적 독재가 국제적 공인을 받고 있거나 또는 찬양을 받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독재자에 굴복하는 것을 평화라고 속이는 바보들은 선량한 사람들이 고통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독재자의 공범들이다. 이들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평화는 달성될 수 없으며 독재자는 과오를 뉘우칠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다. 위장평화는 없느니만 못하다. 우리는 독재자의 들러리로 변질된 위장평화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 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