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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나는 ‘대통령이 된 간첩’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 제목 자체가 얼마나 끔찍한가. 적국의 에이전트가 국민을 속이고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이 얼마나 황당하고 위험한 일인가. 그럼에도 그런 소설 제목이 생각난다는 것은 그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국정치의 현실인 것이다.
비록 김대중이 간첩이란 것을 그 당시 알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호남인들의 그에 대한 맹목적 지지가 워낙 열렬하여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설득이 먹혀들 여지가 전혀 없었고, 호남인들이 간직하고 있는 일종의 ‘한’을 김대중을 통해 풀어내지 않고는 한국 정치가 한 걸음 더 전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공안기관에서는 김대중의 전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의 대통령 출마를 막지 못하고 또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것을 막지 못한 배경에는 이러한 호남인의 맹목적 지지가 자리잡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5.18사태를 겪은 후라 더더욱 그러한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호남인들의 메시아 그 자체였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호남출신 지식인들은 오히려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예를 들어 이청준의 “춤추는 사제”는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끔찍한 소설이다.
김대중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5년이 다 지나가는 지금에 와서 나는 다시 ‘대통령이었던 간첩’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쓰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아니 소설이 아니라 사실은 그러한 시각에서 공안기관의 수사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게 된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어 한 일 중에 6.15공동선언, 전교조 및 민노총 합법화만 두고 보아도 그는 북한의 대남지령을 이행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핵무기를 비밀리에 제조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북한에 대한 봉쇄가 효과가 없다면서 북한에 대한 제재를 반대하였다. 그리고 정권은 김대중이 선택한 후계자 노무현으로 넘어갔고 노무현 또한 충실하게 북한의 대남전략을 더 통 크게 실행하였다. 지금도 김정일을 만나 남북관계를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뒤틀어놓기 위해 평양으로 김정일을 만나러 간다고 한다.
지금 김대중이 노구에, 그것도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투석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 중에 있다. 혹자는 그가 미국에 숨겨놓은 비자금을 직접 관리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던 그가 미국에서 하는 일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국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일의 대변인이 되어 미국이 김정일을 이쁘게 봐 달라고 조르고 노무현이 평양 가서 하려는 일을 도와달라는 연설을 하고 다닌다.
그가 말하는 메시지의 핵심내용은 미국이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김정일이 잘 할 테니 제발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김정일의 미래의 행동을 믿고 지금 그를 제재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실현이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로 지금 김정일을 지지해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사기꾼의 숫법이다. 이들은 언제나 불확실한 미래나 막연한 추측이나 근거 없는 장미빛 전망으로 사람을 속인다. 또한 그는 노무현-김정일의 제2차 평양회담에서 평화선언을 하도록 방관하고 있으라고 주문하고 다닌다. 바로 김정일이 바라는 연방제를 이 기회에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김대중, 그는 아직도 김정일이 수여하는 영웅칭호에 목말라하는 혁명투사 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그의 최대의 희망은 아마도 그의 무덤에 ‘애국열사 김대중’이란 비명을 새기는 것이리라. 전직 대통령이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미국으로까지 건너가 김정일의 대변인이 되어 활동하는 그의 모습은 분명 이 자가 간첩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아직도 그 자격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복무했었다면 시늉이라도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발언하고 행동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그는 영원한 혁명투사, 김정일의 하수인, 북한의 에이전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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