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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국기법 시행령에 포함되어 있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개정한다고 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몇 가지 고쳐야 할 표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폐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
현재의 국기에 대한 맹세 문안은 다음과 같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유시민은 2003년 국기에 대한 맹세는 “군사 파시즘과 일제의 잔재”라고 하면서 폐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구체적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가 “박정희 정권이 만든 국가주의 체제의 유물”이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유시민의 주장은 친북좌파의 조국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 것이며 지금도 친북좌파세력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폐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의 명령을 통해 양심을 획일화하고 애국을 강요하는 교육은 청소년 인권과 자유를 억압하고 국가의 범죄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정부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통해 개인에게 애국을 강제하는 잘못을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친북좌파세력은 국기에 대한 맹세가 무슨 ‘우상화’라는니 또는 ‘종교의식’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내세워 폐지할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는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정서와 이념이 깊이 뿌리박혀있다. 유시민이 국기에 대한 맹세가 군사파시즘과 일제의 잔제라고 한 것이나 박정희 정권이 만든 국가주의의 유물이라고 못박은 것도 그러한 태도를 보여준다. 이들의 의도를 보다 명백하게 보여주는 주장은 국기에 대한 맹세가 애국을 강요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나 인식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갖기 힘든 것이다. 오직 대한민국을 조국이 아닌 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나 인식을 반영한다. 사실 80년대 학생운동이 친북공산혁명을 목표로 한 국가전복운동의 측면이 강했음을 인정한다면 이들의 국기의 맹세에 대한 딴지걸기 역시 그 차원에서 주장되는 것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현대 국제질서는 국가를 단위로 하여 형성되어 있고 또 각 개인의 자유나 인권은 모두 국가를 통해 구체화되기 때문에 국가는 필요불가결한 생활의 단위다. 특히 일제식민지를 거친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국가가 우리들의 온전한 개인적 삶을 보장하는데 있어 절대로 필요한 존재이며 우리들 자신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그럼에도 애국심, 즉 조국에 대한 충성심을 함양하기 위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도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질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이들의 주장이 겉으로 내세우는 가치와는 달리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반역활동의 일환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따라서 국기에 대한 맹세는 조국에 대한 사랑, 조국에 대한 충성심을 함양하기 위해 필요한 상징적 차원의 의식절차이며 이를 폐지할 이유는 없다. 다만 현재의 국기에 대한 맹세 문안에는 지나친 표현과 내용적으로 문제가 되는 표현이 있어 약간의 수정은 불가피한 것 같다.
수정이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국기에 대한 맹세가 박정희 정권에 의해 그 원문과 다르게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원문은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원문의 ‘정의와 진실로서의’ 충성이 유신 초기 문교부가 재작성한 맹세문에서 ‘몸과 마음을 바치는’ 무조건적인 충성으로 바뀌었고, ‘조국의 통일과 번영’은 국가의 영원함을 기원하는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으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또한 원문은“행위자의 개인적 양심과 도덕적 판단에 기초하지만, 후자는 무조건적인 애국을 강요하는 것”이며 “그 외에도 태극기가 자랑스럽지 않아도 자랑스러워야 하고, 대한민국은 한없이 빛나고 영화스러워야 하며, 그런 조국에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한다. 조국의 정의와 진실에 대한 성찰은 빠져 있다. 사람의 감성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섬뜩한 문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반국가적이며, 조국에 대한 반역심이 없이는 하기 힘든 말이라고 생각되며 이런 주장이야말로 듣기에 섬뜩한 것이다.
조국에 대한 사랑, 국가에 대한 충성은 개인의 양심과 판단에 맡길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 모두의 약속이며 도덕이며 의무다. 따라서 원문의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한다는 한정적 문구는 옳지 않다. 개인적 판단에 따라 충성할 수도 있고 충성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 이것은 충성이 아니다. 이 말은 곧 반역할 자유를 달라는 말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 문안의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이란 표현은 문제가 있다. 조국은 충성의 대상이지만 민족은 그렇게 말하기 힘들다. 우리들의 충성의 대상은 국제법 질서의 기본단위인 국가이지 법적으로 결속되어 있지 않은 ‘민족’이 될 수는 없다. 특히 조국이 분단되어 있는 현실에서 북한에 존재하는 반국가단체도 민족이란 이름으로 충성하여야 하는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현 문안에서 “민족”이란 단어는 제외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또한 “몸과 마음을 바쳐”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과도한 희생을 요구하는 측면이 있다. 물론 ‘충성’은 무조건적인 댓가 없는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요구하기도 또 맹세하기도 힘드는 것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충성”이란 용어에는 이미 몸과 마음을 바칠 정도의 희생정신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굳이 그런 표현을 할 이유도 없는 것 같다.
행자부가 전문기관에 의뢰해 선정한 세 가지 수정안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서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영광을 위하여 국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사랑과 자유와 평등의 이름으로 국민의 의무를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써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문안의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국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은 충성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또한 충성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한정어도 필요하지 않다. 더구나 “정의와 진실”이란 표현도 무의미하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수정한다면 다음과 같이 바꾸면 좋을 듯하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을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이 한 문장이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맹세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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