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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1일 사설 <불법 부추기는 '대통령 명령' 듣지 말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 선거가 이렇게 무법적으로 진행돼야 하는가. 언제 또다시 '깽판'을 칠지 전전긍긍하며 현직 대통령을 달래기만 해야 하는가. 그러는 사이 새로운 미래의 비전과 정책을 논해야 할 선거판은 난장판이 돼가고 있다. 그런데도 이를 관리해야 할 중앙선관위는 대통령의 참모로부터 '독재권력의 하수인'이라는 조롱을 받아가며 신중함만 강조한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선관위의 경고에 대해 "대통령의 입을 봉하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참여정부 평가포럼 집행위원장은 "선출된 권력만이 유일하게 정통성 있는 권력"이라며 선관위의 경고를 비난했다. "대통령은 나라의 왕이자 집안의 가장"이라는 그의 말이 바로 이 정권의 인식이다. 그런 초헌법적 제왕이니 공직선거법 정도는 무시해도 된다는 뜻 아닌가.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노 대통령이 전체 공무원에게 그런 불법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그저께 국무회의에서 정부 산하의 연구기관들에 대통령 후보들의 정책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해 국회에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명령'이니 그렇게 하라고 강요했다. "어느 당이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따지지 말라"며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공무원의 중립의무에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다. 이제 본인이 불법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것도 모자라 국가기관까지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은 끔찍하다" "열린우리당 후보나 그 후보와 단일화한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수없이 강조해 왔다. 선거운동을 하려고 현행 선거법을 위선적 제도라고 주장하고, 위헌소송까지 하겠다는 대통령이다. 그의 지시로 만들어질 정부 기관의 보고서들이 어느 후보를 비방하고 어느 후보를 찬양하는 내용이 될지, 어떤 정당의 입맛에 맞추게 될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이미 논란을 빚고 있는 건교부의 경부운하 검토보고서가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결국 전 공무원에게 여권 후보의 선거운동 자료를 만들라고 지시한 꼴이다. 중앙선관위는 노 대통령이 공직선거법 9조(공무원의 중립의무 등)를 위반했다고 경고했다. 이제 전체 공무원을 동원한 인해전술로 이를 무력화하려는 것이다. 또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를 규정한 85조나 '공무원 등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금지'한 86조를 묵살하는 언행이다. 이런 지시를 한 국무회의가 바로 86조 ①의 2에서 금지한 '선거운동 기획'에 다름 아니다.
대통령의 지시라고 불법 문서를 작성한 공무원이 면책될 수는 없다. 불법 명령은 아무리 대통령의 지시라 하더라도 거부해야 한다.
중앙선관위는 경부운하 검토보고서가 선거법에 위반됐는지 조사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유사 문서가 수없이 쏟아지게 됐다. 선관위가 나설 수밖에 없다. 사안별로도 조사해야겠지만 유사 문서의 작성을 명령한 노 대통령의 언행에 대해서도 엄중히 경고해 위법 사태가 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검찰도 선거법이 규정(9조②)한 대로 정부의 선거법 위반을 바로 수사해야 한다. 그래야 야당만 수사한다는 비난을 면할 수 있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