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승희 사건은 참으로 안타까운 비극적인 사건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지만 최초 정착시기에 자녀들이 겪는 문화적 충격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어떤 부모는 영어가 최고라는 생각에 아이들을 무조건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학교로 입학을 시키지만 언어도 서툴고 문화도 생소한 곳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부모들은 대부분 소득을 올리기 위해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는 관계로 자식들과 대화할 시간도 많지 않다. 따라서 자식들은 대부분 스스로 적응해야 하며 적응하지 못하면 어려운 시간을 맞게 된다.

    조승희의 경우 한국의 기준으로 보면 성공한 사례에 속하지만 본인 자신은 그렇게 보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미국생활에서 겪은 온갖 어려움에 대한 적절한 해소방법을 찾지 못하고 내면적으로 불만이 쌓였고 급기야 자신이 넘을 수 없는 문화적 장벽을 스스로 만들고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 같다. 자신의 내면세계에서만 판단한다면 자신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만 객관적으로 자신을 관조할 수 있었다면 그는 스스로 자신이 행운아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문제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한국의 친북좌파들이 보여주는 태도다. 지난 2002년의 여중생 사망사건 때와는 너무나 다른 기준에서 이 사건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여중생 사망사고는 그야말로 사고로서 미군의 고의성은 없었다. 사건의 책임자를 따지자면 인도를 만들어 놓지 않은 한국정부의 책임이 90%이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친북좌파세력은 부대장의 사과나 사령관의 사과, 심지어 대사의 사과나 국방장관의 사과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기어코 부시 대통령의 사과까지 받아냈다. 그러나 이번 조승희 사건에서는 한국이 적절한 수준의 유감표명조차 비굴하다며 비난하고 있다. 무슨 사건이든 반미적 시각에서 이용하려는 이들의 위선적 태도가 잘 나타난다.

    이들은 또한 조승희 부모가 영주권을 가졌지만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국 정부가 그들의 소재나 안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탈북자들에 대해서는 한국 국민이므로 한국정부가 적극적으로 보호해야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의 경우 미국에 세금을 내지만 한국에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한국국민으로서 부담해야 할 의무도 지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국민으로 보기 힘든 측면이 있다. 그러나 탈북자는 대한민국의 영토인 적의 점령지에서 탈출하였으므로 당연히 한국 국민이다. 북한을 탈출한 순간 그들은 한국정부의 보호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들은 탈북자의 보호에 소홀한 정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이들은 이중기준을 가지고 있는 위선자들인 것이다.

    또한 조승희의 사건은 미국의 퇴폐문화와 총기문화의 소산으로 이번 사건은 조승희의 책임이 아니라 미국사회의 책임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직접적인 책임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한 조승희 개인에게 있다. 비록 간접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미국사회의 문제점이 노출되었다고 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조승희의 개인적 책임이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지만 여중생 사망의 경우 지방도에 겨우 차량 두 대만 교행할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길, 지역주민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인도가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국의 지방도는 대부분 비인간적으로 건설되어 있다. 한국정부가 교통사고의 책임의 상당부분을 져야 한다.

    이러한 사건들에 대한 친북좌파의 무조건적 반미적 태도는 결코 사건의 해결에 있어서도 교훈을 얻는데 있어서도 옳지 못하다. 정치적 이념에 따라 특정 사건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러나 기본원칙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반미시각에서만 사건을 보는 태도는 옳지 않다. 어떤 사건이든 법률적 측면, 문화적 측면, 정치적 측면 등 다른 각도에서 조명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한 시각에 갇혀 있지 않고 종합적인 시각에서 차분하게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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