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5일자 오피니언면 '아침논단'란에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쓴 <"싫으면 싼 동네로 가라"는 논리>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주 노무현 대통령은 한 토론회에서 “종부세 줄이려고 이사를 간다면 집값이 싼 곳으로 가야 하는데 비싼 동네에서 비싼 동네로 가겠다니 문제이며, 싼 동네로 이사를 가면 양도세 내고도 돈이 한참 남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부동산정책 흔들려는 사람’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라지만, 노 대통령 특유의 화법을 감안하고 받아들이더라도 우려스럽다. 단순한 말실수나 직설적 표현이라기보다는 참여정부의 정책기조와 맥이 닿아 있는 문제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동네는 특별하다. 단순한 주소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비싼 동네’인 강남구의 자동차 등록계는 얼마 전까지 ‘강남 번호’인 ‘서울55’를 받으려는 타지역 사람들로 붐볐다. 번호판 체계가 바뀐 이후에도 비거주자들의 등록 대열은 여전하다고 하니, 사람들의 강남선호를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이 교육여건 때문이든, 주거환경 때문이든, 혹은 과시욕과 같은 심리적 현상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건만 허락된다면 자동차등록증이 아니라 등기부등본도 강남에 가지고 싶어할 것이다. 더구나 강남3구의 부동산 가격 상승률은 타지역을 늘 앞질렀기 때문에 한 번 ‘싼 동네’로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기 힘들었다. 양질의 소비생활이었을 뿐만 아니라 최선의 투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비싼 동네는 언젠가는 이사 가고 싶어하는 중산층의 선망과 선거자금이라도 마련해야 하는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머무르고 싶어하는 자부심이 교차하는 곳이다. 국민들 잘 살게 한다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런 좋은 동네를 많이 만들고, 또 더 좋은 동네로 이사 갈 수 있도록 세금은 줄이고 소득은 높여주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도 “세금 내기 힘겨우면 떠나라”는 것은 국정의 책임자가 주는 조언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이런 논리가 부동산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영역에서 지속된, 참여정부 정책의 기본방향이었다는 점이다. 좋은 학교 가고 싶은 학생이나 좋은 학생 선발하고 싶어하는 대학의 욕구를 무시하는 교육정책,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겠다는 기업의 투자의욕을 억누르는 각종 규제, 더 풍요한 삶을 위해 열심히 경쟁하고 노력하고자 하는 의욕을 꺾는 지나친 평등주의에는 “싼 동네로 가라”는 식의 획일주의적 규제만능의 전제가 배어있다. 더 나은 생활을 향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정책으로 다스리겠다는 관료적 발상이 오만하다.

    정책은 겸허해야 한다. 인간의 욕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선호체계에 입각한 정책을 입안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물코를 촘촘하게 짜더라도 물을 담을 수는 없는 것처럼, 대상자들의 기본적인 유인(誘因)을 거스르는 규제는 그들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회로를 찾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 우회수단이 쌓여 언젠가는 ‘시장의 복수’라는 이름으로 돌아온다. 소비자의 적나라한 이기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시장경제체제는 흥했고,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한다”는 숭고한 정신에 입각해 규제에 의존한 계획경제체제는 몰락했다. 하향평준화를 위한 과도한 규제보다, 더 나은 생활을 꿈꿀 수 있게 하는 시장친화적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시장경제체제를 지속하기로 합의하는 한, 반드시 준수해야 할 지향점이기도 하다.

    지난 4년의 경제실적이 나쁘지 않았다고 참여정부 스스로는 자화자찬하지만, 국민들의 시선이 싸늘한 것은 바로 “왜 굳이 비싼 동네에 들어가려고 하느냐”는 식의 평등주의 때문이다. 대통령은 유연한 진보냐 교조적 진보냐 하는 이념적 논쟁에 열중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국민들이 비싼 동네에서 살 수 있고, 마침내 나라 전체가 비싼 동네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야 했다. 노 대통령은 같은 자리에서 “차기 대통령은 정치를 좀 알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소비자의 꿈과 시장의 역할을 존중할 수 있는 ‘겸허함을 좀 아는’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