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2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4일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 서울대생 박종철 씨의 고문치사 사건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독재 권력의 말기 증상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시점에 발생한 박 씨 고문치사 사건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폭발시켜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두환 정권의 독재체제가 끝장나고 민주화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박종철’은 한국 민주화의 영원한 불꽃이요, 상징이다.

    본보는 6·29 민주화 선언이 나오기까지 6개월 동안 박 씨 사건 보도를 주도함으로써 민주화에 기여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정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집중 보도한 본보는 당시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만 가두판매로 하루 60만 부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한국기자협회는 그해 본보 보도를 가장 높이 평가해 박 씨 사건 취재팀 기자들에게 한국기자상을 수여했다. 이는 본사만의 영광이 아니라 많은 양심적 인사의 용기 그리고 민주화를 갈구하는 시민의 열망이 함께한 것이었다.

    정부 산하 기구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6월 민주항쟁계승사업회도 본보의 공로를 인정해 취재 보도 과정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다큐 6월 항쟁’의 원고를 본사에 요청했다. 사업회 관계자는 “동아일보는 집중적 심층적 기사를 통해 독재정권의 인권 유린에 대한 국민적 의분을 불붙게 했다”고 원고 청탁 이유를 밝혔다.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는 그동안 친북 좌파세력의 활동에 대해서도 ‘민주화 공로증’을 주고 보상해 줬다. 그러나 당시 독재정권의 발표를 받아 적던 신문과 방송은 지금 ‘개혁 언론’으로 불리며 정권의 지원을 받고 있고 본보를 비롯한 주류 언론은 ‘개혁 대상’으로 몰리고 있다. 실질로서의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는 아직 갈 길이 멀단 말인가.

    집권 386 운동권 세력은 국민의 열망으로 이뤄 낸 민주화를 자신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행동하며 각종 요직을 차지하고 보상을 받을 만큼 받았다. 그러나 최루탄 연기에 눈물을 흘리며 6월 항쟁의 불씨를 달구었던 언론사와 기자, 길거리에서 민주화의 경적을 울렸던 넥타이 부대들은 그들만의 잔치를 먼발치서 구경하는 것으로 박 씨 서거 20주기를 맞는다.

    정부는 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벌인다. 우리는 순수했던 민주화운동이 친북반미의 잔치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한다. 그것은 박 씨의 희생과 6월 항쟁의 순수성을 배신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