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3일자 오피니언면에 한영우 한림대 특임교수(한국사 전공)가 쓴 시론 '극좌·극우의 한계를 넘어서'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 연말 대학 1학년생들에게 국사시험을 치르면서 6·25가 남침인가 북침인가를 물었더니 절반 가까운 학생들이 북침이라고 답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국사 교육의 현실이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아마 권력 주변에도 이런 역사 의식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좌파적 역사 의식을 바꾸겠다고 나선 일부 뉴라이트의 대안 교과서 시안도 말썽이 되고 있다. 일제시대를 긍정하고 5·16을 혁명으로 보면서 4·19는 학생운동으로 폄하한 것이다. 교육계와 지성계의 역사 의식이 극좌와 극우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새 각오를 다지는 것이 새해의 과제라면 이 문제부터 정리하지 않을 수 없다.

    좌파는 ‘민중’을 사랑한다면서 정작 민중을 위한 정책과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다. 역사에서 지배층을 ‘적(敵)’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리더십, 즉 지혜와 경륜을 배우기보다 ‘적’과의 투쟁만을 강조하니 권력을 잡아도 ‘적’을 찾는 데 관심을 둔다. 재력과 식견이 앞선 강자가 ‘적’으로 간주되고 이들과의 대결을 통해서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민중’을 초월한 ‘국민’을 위한 정책은 뒷전으로 밀리니 국민의 지지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들은 대외정책도 ‘강자’와의 대결에 힘쓰고 그 결과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게 된다. 약자를 대변한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약자를 더욱 약자로 만들어 다같이 못사는 국가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극단적 진보세력이 대체로 이와 같은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은 20세기 좌파의 실험이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좌파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이 극우로 해결된다고 보는 것도 시대착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극우는 강자의 편에서 역사를 본다. 제국주의나 군사 통치나 경제력을 키웠다면 그들이 저지른 반민주적 행위와 도덕적 하자는 눈감아 줄 수 있다는 시각이다. 그러므로 일제시대에 인권과 민족의 자존심이 무너진 것은 보지 않고 오직 경제적 성장을 찾는 데 열을 올리고, 군사정권 시기에는 그 산업화의 업적만 강조되는 것이다.

    우리의 경제가 지금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므로 활기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산업화 시기의 어두운 면을 눈감고 넘어가는 것은 온당한 역사 의식이 아닐 것이다. 힘만을 숭상하여 ‘약육강식’을 인정하게 되면 인간은 이미 동물의 세계로 전락하고, 이는 도리어 좌파의 입지를 넓히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극우의 대외정책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강대국과의 우호와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지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어 능력과 문화적 자존심은 국가 존립상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근대화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일로서 어느 하나를 버릴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그러므로 산업화냐 민주화냐 양자 택일의 시각에서 우리의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지난 시기의 산업화나 민주화 방식이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 또한 시대착오다. 이제는 산업화가 아니라 지식정보화시대이고, 문화 콘텐츠가 경제를 일으키는 키워드로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민주화도 투쟁 일변도 방식은 누구의 지지도 받기 어렵다. 역시 문화로 접근해야 한다.

    소득 1000달러 시대와 2만달러 시대는 삶의 방식이 같을 수 없다. 또 20세기와 21세기는 문명의 형태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삶의 질을 따지는 시대는 증오와 투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진실하고 부드러우며 문화적 품격을 갖춰야 리더십이 생기고 상품 가치도 높아질 것이다. 그 문화 속에 생명과 환경, 복지가 담겨야 할 것이다.

    금년은 대선을 치르는 해이기도 하다. 지도자의 품격과 경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지난 몇 년간 뼈저리게 경험했다. 공약과 정책으로만 지도자를 볼 것이 아니라 역사 의식을 검증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지 않겠는가. 국민의 대다수는 극우도 극좌도 아니라고 본다. 중도 성향의 균형 잡힌 역사 의식을 지니고 표준적인 한국인을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자가 아쉽다. 만사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경구를 새해 아침에 새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