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4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박두식 정당팀장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역시 노무현 대통령이다. 대통령에 취임한 지 3년 반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변한 게 없다. 오히려 ‘노무현’ 하면 떠오르는 특징들이 갈수록 더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상황을 보면 노 대통령은 누가 뭐라 하든 자기 방식대로 하기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냥 혼자 자기 길을 가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를 따르라’고 주문하고 있다. 한·미 전시작전통제권과 FTA(자유무역협정) 문제, 인사 파동, 광복절 사면 등에서 드러난 노 대통령의 태도가 그렇다. 대단한 자기 확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달리 말하면 오기(傲氣)이고 독선이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치적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지 모르지만, 국민의 평가는 정반대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민의(民意)가 직접 표출되는 장이 선거다. 현 집권 세력은 여기서 연전연패하고 있다. 올해 실시된 5·31 지방선거와 7·26 국회의원 재·보선 결과는 다른 어느 때보다 혹독했다. 여당의 5·31 선거 참패는 어지간해선 깨지기 힘든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그게 바로 ‘노무현 정부 3년 반’에 대한 성적표다. 오죽하면 여당에서조차 “노 대통령이 민심에 의해 탄핵당했다”는 평가가 나왔을까. 국민들이 노 대통령을 비롯한 현 집권세력에게, 지난 3년 반과는 다른 국정 운영을 주문한 것이라고 여당 의원들까지 얘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노 대통령의 답이 ‘마이웨이’인 셈이다. 오히려 노 대통령은, 민심을 전하겠다고 하는 열린우리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여당 지도부를 만나서 “20%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라고 무시하는 것이냐”, “나도 뜰 날이 있을지 아느냐”는 말로 역공을 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거꾸로 열린우리당이라는 ‘큰 배’를 지키고 있으면, 결국은 반전의 기회가 올 것이라는 논리로, 여당을 설득하고 있다. ‘언젠가 대박이 터질 테니 나를 믿고 함께 가자’는 주술을 걸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노 대통령과 가까운 한 의원은 “노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은 불리한 정치 지형 탓이지, 자신의 원칙과 철학에 문제가 있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통령이 바깥 민심은 물론 여당의 대다수가 생각하는 당심(黨心)과도 멀어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여당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노 대통령은 더 이상 해법이 아니라 문제의 진원으로 인식되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런 얘기에 귀를 막기로 작심한 듯하다. 최근 문화관광부 차관 사퇴를 둘러싼 인사파동이나, 측근 봐주기 사면 논란에서도 민심에 아랑곳 않는 노 대통령과 청와대의 심리 상태를 엿볼 수 있다. 두 사건 모두 ‘뭐가 어때?’ 하는 식의 오기가 느껴진다. 노 대통령의 사면권 남발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작년 석가탄신일과 8·15 때 여당의 정대철 고문과 이상수 현 노동부 장관 등을 사면했다. 당시 이미 재임 중 비리에 연루된 자신의 측근을 사면하는 전례가 거의 없다는 이유 등으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이 같은 비난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번에도 최측근이라는 안희정씨와 신계륜 전 의원에 대한 사면을 실시했다. 열린우리당조차 떨떠름하게 여기는 상황이었다. 잠시 욕을 먹더라도 자기 식구 챙기기가 먼저라는 식이다. 국민과 정상적으로 소통(疎通)하려는 대통령이라면, 감히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권력자가 바깥 여론에 개의치 않고 ‘내 갈 길을 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상황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이미 그런 길로 접어든 것 같아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