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논설위원이 쓴 '23승 260패 하고도 당당한 정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일본 프로야구의 명문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이승엽 선수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센트럴리그 6개 팀 중 5위에 처져 있다. 승률이 43%다. 하라 감독은 “내 야구 인생에서 이렇게 굴욕적인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43% 승률이 굴욕적이라니. 한국 정치리그에서 열린우리당이 겪고 있는 치욕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했던 2004년 4월 총선 이후 다섯 차례 선거가 있었다. 2004년 6월 재·보선, 2005년 4월 재·보선, 2005년 10월 재선거, 지난 5월 전국 지방선거, 7월 26일 재·보선….

    열린우리당은 참담한 5연패(連敗)를 했다. 종목별 전적은 국회의원 14전 14패, 시·도지사 20전 1승19패, 시장·군수·구청장 249전 22승227패다. 종합 전적은 283전 23승260패, 승률로 따지면 8.1%다. 프로야구였다면 감독이 수십 번 바뀌었을 것이다.

    그래도 여권 사람들에겐 믿는 구석이 있다. 김대중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정권 후반기 재·보선 네 차례와 지방선거에서 278전 51승227패를 했다. 승률 18.3%. 노무현 정권의 8.1%와 오십보백보다. 김대중 정권은 그렇게 작은 판에서 다섯 번 내리 진 뒤 대선이라는 큰 판을 먹었다. 노무현 정권에서도 같은 시나리오가 반복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맞는 얘기다. 여당이 자잘한 선거에서 5연패를 했다는 점은 똑같다. 그러나 패배를 받아들이는 두 정권의 자세엔 차이점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보선에서 크게 지자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며 깊이 반성한다”고 했다. 청와대 전체도 침통한 분위기였다.

    화가 났다가도 상대가 미안한 시늉이라도 하고 풀이 죽어 버리면 이쪽 기분도 누그러지게 마련이다. 유권자들이 김대중 정권에 대해 품었던 분(憤)은 몇 차례 선거의 ‘여당 때리기’를 통해 거의 해소됐다. 2002년 대선을 치를 무렵 김대중 정권은 거의 잊혀진 존재가 됐다.

    반면 노무현 정권은 5연패를 어떤 자세로 맞았나. 첫 번째 패배 때 청와대는 “공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고, 두 번째 패배 때 청와대 대변인은 “당·청 분리인 만큼 청와대가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한마디로 청와대는 선거결과에 책임질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작년 10월 3연패째를 당하자 대통령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처음으로 반성 비슷한 게 나온 것이다. 그러나 여당에서 청와대 책임론이 나오자 대통령은 “정치는 당(黨) 중심으로 하라”며 발끈했다. 선거는 여당문제라는 입장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지난 5월 지방선거 참패 후 대통령은 “민심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는 묘한 표현을 썼다. 변덕스러운 민심이 문제라는 식이다. 그러면서 “그동안 추진해온 정책 과제를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했다. 연전연패하며 승률이 10%도 안 되는 감독이 그동안 써온 작전에 문제가 없었다며 계속 밀고 가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난달 다섯 번째 패배 후엔 청와대는 아예 입을 열지 않았다.

    정권에 성난 민심이 회초리를 들었는데 정권은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토를 단다. 오히려 민심을 꾸짖기까지 한다. 이래선 정권에 대한 국민의 응어리가 풀리질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도 선거에서 지고 나서 사과한 적이 있기는 하다.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했을 때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는 “부패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뼈저리게 느꼈다”며 몇 차례나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형식은 대(對)국민 사과였지만 내용은 비리에 연루된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과 측근들에 선거 패배 책임을 떠민 것이다. 그래 놓고 정작 자신의 나라 운영에 대해서는 국민이 다섯 차례나 거듭 심판해도 반성의 한마디가 없다.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