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를 놓고 말이 많다.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인 한나라당의 간판을 걸고 당선된 오세훈의 당선 후의 행보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과연 이 사람이 한나라당을 대표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울뿐만 아니라 그가 오히려 열린우리당이나 친북좌파세력을 대표하고 있다고 볼 만한 상황이 전개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친북좌파세력이 한나라당에 심은 ‘트로이의 목마’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오세훈이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것은 그와 비슷한 성향의 소장파 그룹의 연출에 의해서다. 원희룡 등 한나라당의 간판을 달고는 있으나 항상 한나라당과는 맞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소위 386세대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 사람보고 찍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모두들 눈감고 무조건 2번을 찍었다고 했다. 오세훈이 아니더라도 한나라당 간판을 달고 나온 사람이라면 그것이 홍준표든 맹형규든 또는 그 누구든 당선되었을 것이다. 이 상황을 간파한 소위 386그룹이 잽싸게 서울시장 자리를 낚아챈 것이다.

    오세훈은 서울시 행정인수위원장으로 최열을 임명했다. 그리고 박원순변호사 등이 운영하는 희망제작소에서 교육을 받겠다고 했다. 오세훈은 단순히 환경운동의 인연만을 강조했지만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사람이 그렇게 순진하게 인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배경에는 치밀한 전략과 추진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제가 있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그의 인선은 그의 사상적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창이다. 오세훈도 한국 사회의 386세대의 태생적 한계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386운동권 세대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한국에 정착하지 못한 이방인 집단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한국인이면서 한국을 부정하는 자기모순에 가득 찬 사람들이다. 아니, 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한국인이면서 한국의 적대 세력인 북한의 김정일 군사독재자에게 충성하는 반역세력이다. 이들은 따라서 자기 정체성이 없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의 자긍심도 없다. 이들은 단지 북한의 군사독재자의 손놀림에 따라 춤을 추는 군사독재자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 잘 알다시피 80-90년대의 학생운동은 순수한 민주화운동이 아니었다. ‘전대협’이나 ‘한총련’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학생운동은 간단하게 말하면 북한의 대남전략에 따라 인민민주주의혁명을 목적으로 하는 이적/반역세력으로서 한 마디로 ‘주사파’라고 불리는 집단이다. 주사파는 ‘위수김동’이니 ‘친지김동’이니 하면서 김일성에게 충성맹세를 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충성맹세문의 예를 들면, “위대한 수령님 김일성 동지와 우리의 지도자 김정일 비서의 만수무강과 한민전의 영도 아래 이 한 목숨 끊어질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 결단으로 나아가자” 또는 “주체의 깃발 따라 계속 혁신, 계속 전진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 장군님을 따라 숨통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죽음으로 혁명을 사수하며 조국과 민족이 완전 해방되는 그날까지 열사 헌신하겠습니다” 와 같다. 이것이 소위 386으로 알려진 운동권의 실체다.

    이들은 겉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행세하지만 내면으로는 북한의 김정일 군사독재자의 하수인이 되어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북한의 대남전략에 따라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광분하는 이적/반역세력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에 영원히 정착할 수 없는 반대한민국/반역세력일 뿐이다. 이들은 자연수명이 다 할 때까지, 만약에 북한의 군사독재체제가 유지된다면, 영원히 이단세력으로 살아갈 사람들이다. 이들이 개과천선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번 형성된 인격이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의 정체를 낱낱이 밝혀서 이들이 대한민국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우리 몸에 기생하는 기생충은 박멸하는 수밖에 그 대책이 없다. 기생충과 더불어 건강하게 살아갈 방도는 없다. 우리 사회의 기생충 386운동권세대는 영원히 우리 사회에서 추방하여야 한다. 이들 기생충 세대가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없다. 잡초를 뽑아야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듯이, 기생충을 박멸해야 우리 몸이 건강해질 수 있듯이, 우리는 대한민국의 기생충 세대 386을 추방해야 한다.

    <객원 칼럼니스트의 칼럼내용은 뉴데일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