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결집·튀르키예 반발 변수 … '쿠르드 카드' 역풍 우려4개국에 흩어진 쿠르드족 … 중동 갈등의 뇌관쿠르드 개입 땐 동맹 갈등·민족 분쟁 확산 … 전쟁 성격 바뀔 수도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 국면에서 ‘쿠르드 카드’를 꺼냈다가 불과 며칠 만에 입장을 급히 바꿨다. 쿠르드 무장세력을 활용해 이란을 압박할 수 있다는 구상을 시사했지만, 결국 “개입을 원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나 외교 현안에서 종종 입장을 바꿔온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 발언 역시 단순한 메시지 조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를 단순한 '말바꾸기' 화법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 배경에는 중동 정세에서 가장 복잡한 지정학 변수로 꼽히는 '쿠르드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쿠르드 문제가 개입할 경우 전쟁이 민족 분쟁과 동맹 갈등이 뒤얽힌 통제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다.

    ◇쿠르드 활용한 '우회 압박' 구상 … 이란 내부 결집 역효과 우려

    영국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쿠르드 전투원들이 이란 서부 지역에 지상 공격을 감행할 경우 미국이 공중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는 구상을 언급했다.

    미군이나 이스라엘군 대신 쿠르드 세력을 지상 전력으로 활용해 이란 정권을 압박하는 이른바 '우회 압박 전략'이다.

    이 전략은 쿠르드 세력이 이란 서부 지역을 장악할 경우 이란 내부 소수민족의 불만을 자극해 정권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구상이 현실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쿠르드 무장세력 규모가 수백명에서 최대 1500명 수준에 불과해 이란 군사력에 비해 크게 열세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정치적 파장이다. 외부 세력이 쿠르드 문제를 활용해 이란을 흔들려 한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오히려 이란 사회 내부 결집을 강화하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 ▲ 쿠르드족 분리주의 무장단체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의 무장대원들. ⓒ연합뉴스.
    ▲ 쿠르드족 분리주의 무장단체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의 무장대원들. ⓒ연합뉴스.
    ◇'쿠르드 변수'가 건드리는 또 다른 축, '나토 가입국' 튀르키예

    쿠르드 문제가 특히 민감한 이유는 튀르키예(터키) 때문이다.

    쿠르드 문제는 튀르키예에게 단순한 소수민족 갈등이 아니라 국가 안보의 핵심 문제로 여겨진다. 튀르키예는 자국 내 쿠르드 분리주의 운동을 수십 년간 강경하게 억제해 왔으며, 쿠르드 무장조직인 PKK(쿠르드노동자당)를 테러 조직으로 규정하고 군사 작전을 이어왔다.

    이 때문에 쿠르드 세력이 이란 전쟁에 개입해 영향력을 확대할 경우 이는 튀르키예 내부 쿠르드 문제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튀르키예는 시리아와 이라크 북부에서 쿠르드 세력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여러 차례 군사 작전을 벌였다.

    결국 쿠르드 세력의 개입은 이란 전쟁을 넘어 튀르키예까지 끌어들이는 확전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튀르키예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핵심 회원국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쿠르드 세력을 지원하거나 활용하는 방식으로 전쟁 전략을 펼칠 경우 이는 곧바로 튀르키예의 반발을 불러 나토 내부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실제로 시리아 내전 당시 미국이 쿠르드 민병대(YPG)를 지원하자 튀르키예가 강하게 반발하며 양국 관계가 크게 흔들린 전례가 있다.

    쿠르드족은 튀르키예·이란·이라크·시리아 등에 걸쳐 약 3000만~4000만명이 거주하는 세계 최대 무국가 민족으로, 이들의 움직임은 단순한 군사 문제를 넘어 국경과 민족 문제, 동맹 정치가 얽힌 복합 갈등을 촉발할 수 있는 변수로 평가된다.
  • ▲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공습 후 연기가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공습 후 연기가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 20개국 얽힌 전쟁 … "충분히 복잡하다"

    이번 전쟁은 이미 중동을 넘어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이란이 걸프 국가와 지중해 인접 지역까지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확대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전쟁에 얽힌 국가는 20개국을 훨씬 넘는 것으로 분석된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카타르 등 걸프 국가의 인프라가 공격을 받았고 이라크의 미국 기업 유전 시설도 드론 타격을 받았다.

    전선은 중동을 넘어 코카서스 지역으로도 확산됐다. 이란 드론이 아제르바이잔의 공항과 학교 인근을 타격하며 부상자가 발생했고, 지중해 인접 국가인 키프로스에서는 영국 공군 기지가 공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영국·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이 방공 임무와 군사 지원을 위해 중동에 전력을 파견하면서 전쟁의 범위는 더욱 확대됐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물러섰다.

    그는 7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쿠르드족이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쿠르드족이 개입하지 않아도 전쟁은 이미 충분히 복잡하다"고 말했다.

    이미 다수 국가가 얽힌 전쟁 구조 속에서 쿠르드 문제까지 겹칠 경우 전쟁의 성격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현재 전쟁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을 중심으로 걸프 국가, 레바논, 유럽 국가까지 얽힌 다층적 충돌 구조로 확대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쿠르드 세력까지 전쟁에 개입할 경우 이는 단순한 전선 확대를 넘어 튀르키예를 자극하고 나토 내부 갈등까지 촉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전의 새로운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꺼냈던 '쿠르드 카드'가 불과 며칠 만에 접힌 것도 중동 분쟁의 구조적 복잡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작은 변수 하나가 전쟁의 성격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건이라는 것이다.